[하이파이] 오디오의 혈관, 케이블에 대하여… 케이블 구조만 봐도 음 성향을 알 수 있다?

하이파이 오디오 애호가들을 꾸준히 개미지옥으로 끌고 가는 마성의 컴포넌트,바로 오디오 케이블에 대해 잠시 썰을 풀어보고자 한다.

굳이 케이블 무용론이나 거의 기(氣) 수준의 맹목적 신빙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어차피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기 위해 즉석에서 101가지 이유는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다만 전기적으로는 확실히 검증이 된(오디오적으로 검증은 필자도 어떻게 못 하겠다.) 몇몇 이론들을 살짝 살펴볼까 한다.

우선, 케이블이 “전달자”냐, 아니면 “간섭자”냐 하는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할 듯싶다.하이파이 오디오 분야에 적을 두고 있는 케이블 브랜드들이 한결같이(근 20년째 거의 바뀌지도 않는) 주창하는 카피 중 이런 것이 있다.

 

“원음을 손실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블라 블라 블라….”

원음을 손실 없이 전달한다는 것은 케이블의 전달 덕목에 포커스를 맞춘 것일진대, 그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이냐 하는 것이다. 전기 상식에 비추어 볼 때 가능하긴 한 건가? 자, 이제 최대한 간단하고 쉬운 전기 물리학 공부를 살짝 맛만 보도록 할 타이밍.

저항(Resistance), 캐패시터(Capacitor, 콘덴서), 그리고 인덕터(Inductor, 코일) 이 세 가지는 전기에 대해 문외한일지라도 오디오쟁이라면 어느 정도 들어본 단어들이다. 저항에 대한 개념은 크게 어렵지 않고 익숙하다. 저항값이 높으면 전기(전기 음신호)는 흐르기 어렵다는 것 정도? 다만 캐패시터(콘덴서)와 인덕터(코일)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약간 심화 학습이 필요할 수 있다. 역시나 쉽게 정리해보자.

1) 캐패시터는 전기를 순간적으로 “머금고 있다가” 회로의 전위차가 0이 되면 다시 내뱉는 수동소자이다. 그리고 고 주파수(고음역)을 잘 통과시킨다. 반대급부로는 저음을 좀 잘라먹는 편(하이 패스)**

2) 인덕터는 캐패시터와는 반대로 작용한다. 고 주파수를 잘라먹고 저 주파수를 통과시킨다.(로우 패스)

3) 저항… 저항은 그런 거 없다. 고/저 막론하고 다 같이 죽자!(노 패스!)**

위 세 가지 전자 부품의 특성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녀석이 바로 “오디오 케이블”이다. 스피커 케이블, 인터커넥터, 파워케이블, 심지어 디지털 케이블까지도 예외는 없다. 하이파이 오디오에 사용되는 케이블에서 전기 신호가 도체를 따라 흐른다는 것 정도는 독자들께서 잘 아시리라 본다.

또한 막연히 케이블의 저항값이 작을수록 소리가 좋을 것이라는 기대도 당연한 이치. 그런데, 케이블의 “사정”에 따라 특정 주파수 대역에 대한 필터링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을 조금 달리할 필요가 있다.

도체가 순도 높고 좋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딱히 이견은 없다. 모 브랜드에서는 OFC(무산소 동선) 대신 “유”산소 동선을 쓴다고 하지만, 이는 무산소 동선을 만드는 과정에 첨가되는 불순물을 타케팅한 워딩이지 산소가 들어가서 좋다는 것은 아니다. 도체는 순도 높을수록 일단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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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의 캐패시턴스 효과(콘덴서 효과)를 설명하는 그림.

좀 과장되긴 했지만 우리가 쉽게 접하는 오디오 케이블들이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케이블 피복(인슐레이터, 재킷, 절연체)에 대해서는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말 그대로 절연 목적으로 사용되는 케이블의 피복은 사실 하이파이 오디오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변수를 만들어 낸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요소 중, “캐패시터”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케이블 피복은 부도체일 것이라고 많이들 알고 있다. 그래야 본래 기능인 “절연”을 할 것이 아닌가? 그런제 정확히 보자면 대부분 케이블 피복의 성질은 부도체에 가까운 “반도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아주 미세하긴 하지만(일반 테스터에 잡히지 않을 정도) 어느 정도 전기 신호가 살짝 통하며, 그리고 마치 캐패시터와 같이 순간적으로 전기를 저장했다가 내뿜는 현상이 생긴다.

이러한 케이블 피복 특성에 연관하여 이야기되는 전문 용어가 있는데, “유전율(Permittivity)”이라고 한다. 유전율이 클수록 전기 에너지는 잘 저장/전달되고 작을수록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케이블 피복은 당연히 유전율이 낮아야 한다. 가뜩이나 민감하고 연약한 전기 음 신호를 전송하는 도체,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피복이 조금씩이라도 전기 에너지를 먹었다 뱉었다 한다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위에 언급한 캐패시터의 그 역할과 비슷하다. 음 신호의 혼탁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는 노릇. 때문에 같은 도체라고 할지라도 케이블 피복의 재질에 따라 음색이 달라질 소지는 분명히 있다.

마치 전기기타의 톤 캐패시터와 같은 작용을 한다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다른 점은, 케이블의 원치 않는 커패시턴스는 기타에서와 같이 간단히 제거할 수 없다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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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기타의 톤 캐패시터는 그 기타의 음색을 좌우하는 큰 변수이다.

사진의 오렌지 드랍이라는 캐패시터는 빈티지하고 부드러운 사운드 메이킹으로 유명한 소자

피복의 유전율이 높은 케이블은 일반적으로 고음역이 답답하고 먹먹한 느낌으로 들린다. 무언가 고음역을 깎아먹고 저음역만 내뱉었다는 느낌(로우패스)인데, 그런데 이상하다. 케이블 피복의 유전율은 캐패시터와 같다고 했고 캐패시터는 하이패스 필터라 했다. 그런데 왜 반대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캐패시터가 하이패스, 즉 고음역만 살리기 위한 기본 조건은 “직렬”연결이다. 그리고 케이블 피복은 도체를 감싸고 있는 “병렬”연결에 가까운 것이다. 직렬연결에서의 특성은 병렬연결이 되면 반대가 된다. 일단 그냥 그렇게 외우자. 어쨌든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적은 고 주파수 대역의 전기 신호는 손쉽게 케이블 피복에 흡수될 수 있다.

가장 좋은 케이블 피복은 존재하지 않는 피복이다. 물론 불가능한 이야기이며,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에서 이 명제에 대한 차선으로 많이들 강조하는 것이 공기(air). 에어 인슐레이션이라 해서 케이블 피복과 도체가 닿는 면적을 최소화하고, 대신 공기가 도체에 닿게끔 하는 기술이다.

굳이 따지자면 공기는 유전율이 가장 낮은 피복 소재가 될 수 있기에. 형태상으로는, 케이블 도체 심선을 아주 헐렁~하게 감싸고 있는 튜브 모양의 피복을 말한다. (사실 만듦새로 보면 진짜 별거 없다.) 참고로 현실적 소재 중에서 유전율이 가장 낮은 것은 테플론으로 알려져 있다.

케이블 피복의 유전율을 낮추기 위한 아이디어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시도된 적 있는데, 개중에는 아주 신박한 아이디어로 하이파이 오디오 애호가들을 매료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가령 하이파이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친근한 브랜드인 오디오퀘스트(AudioQuest, 친근하지 않다면 당신이 아직 오디오 애호가가 아닐 수도 있다. 딱히 문제는 없지만.)에서는 이 피복 유전율에 대한 해법을 아주 적극적으로 제시해온 바 있다.

 

오디오퀘스트(AudioQuest)의, 제법 오래된 아이디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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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의 경로에 원치 않게 캐패시터가 장착되어 있고, 그 캐패시터는 불규칙적으로 전기 신호를 먹었다 뱉었다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캐패시터를 제거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 아예 주기적으로 이 캐패시터를 충전시켜 버리는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전기는 물의 흐름과 유사하기 때문에, 낙차(전압)이 없는 환경에서는 굳이 이동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는 케이블 피복을 아예 외부 전원으로 충전시킨 상태를 유지한다.

DBS(Dielectric Bias System)이라 불리는 오디오퀘스트의 이 기술은 케이블 피복의 유전특성이 원 신호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만들어졌다. 현재는 72V의 직류 외부 전원(배터리)으로 케이블 피복과 케이블 정 중앙의 별도 도체를 이어 놓고, 끊임없는 피복의 충전(?) 상태를 유지시킨다. 물론 적극적인 도체가 아닌 케이블 피복은 그 소비 전력이 극히 미미하며, 이는 배터리의 자연 방전에 준하는 수준이다.

DBS 시스템이 장착된 오디오퀘스트 케이블들은 모두 한 개의 LED 램프와 작은 버튼이 달려 있는데, 이는 장착된 배터리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용도에 다름없다.

오디오퀘스트는 이 DBS 시스템을 상당히 오랫동안 고수해 왔다. 필자가 아는 세월만 대충 15년은 넘은 것 같다. 초창기 DBS 시스템이 발표되었을 때,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서 나름 고가의 케이블을 잘라내고 분해해 봤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그냥 인터넷상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상세 그림이 있었다는 사실은 한참 나중에 알았다(…) 제품이 출시되는 단계에서부터 DBS는 케이블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DBS가 과연 어느 정도 소리에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DBS 배터리를 제거하고 수개월 정도 케이블을 방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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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전에 오디오퀘스트의 케이블을 리뷰 하다가 제품 반납 타이밍을 놓친 적이 있었다. 무려 5~6개월 정도 후에 확인되었긴 한데, 우연찮게도 DBS 시스템의 연결 케이블이 단락 되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인터커넥터였었는데, 한쪽은 DBS 충전이 된 상태로 6개월, 다른 한쪽은 단락 된 상태로 6개월… 어쩔 수 없이 좌우 채널을 바꾸어 가며 뜻밖의 비교 청음을 해 본 적이 있다.

경험자의 입장에서는 오디오퀘스트의 이 DBS 시스템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이 신박한 아이디어를 꾸준히 이어간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제법 효과가 있다. 필자는 이 아이디어에 영감을 받아, 당시 진행했던 악기용 케이블 제작에 활용한 적도 있다. 물론 특허권이 있는 기술이기 때문에 합법적 기술 우회를 하였지만.

혹시라도 외부 전원이 본 신호에 영향을 끼치면 어쩌나 싶은 우려는 당연히 생길 수 있다. 하지만 DBS에 사용되는 전기는 72V의 직류이며 흐름의 방향은 본 신호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우리의 소중한 음 신호는 당연히 교류이다.

아무튼 오디오퀘스트라는 브랜드의 아이디어를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끔 하이파이 오디오 지인들을 보면 자체 제작(?)으로 만든 솔루션을 사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개 중에는 알루미늄 호일을 가지고 인터커넥터나 디지털 케이블을 꼼꼼히 감싸 쓰는 분들도 있다. 심한 경우에는 오디오 시스템 뒤편이 매우 사이버틱(?) 하게 은색의 호일 범벅으로 빛나는 경우도 있는데, 필자는 현장에서 친히 이것들을 다 벗겨드린 적이 몇 번 있다.

위에 설명한 케이블 피복의 캐패시터 효과를 증폭시키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캐패시터의 구조는 도체와 부도체, 혹은 반도체의 적층 구조로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소리는 아주 부드러워(?) 진다. 만약에 당신의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이 다소 날 선 피곤한 소리라고 생각된다면 일부러 시도해봄 직할 수도 있다. 외부 노이즈를 차폐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음 신호를 적극적으로 갉아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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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가지 케이블 중 왼쪽의 것이 소리가 부드러울 확률이 높다.
도체의 연선 구조는 물론, 과하게 처리된 쉴드는 캐패시터 효과로 인한 고음역 감쇄 효과가 예상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하이파이 라이프에 응용을 좀 해보자면, 특히 인터커넥터의 경우 케이블의 쉴드 부분이 두껍고 촘촘하게 되어 있는 케이블일수록 소리가 다소 부드럽고 고음역의 엣지가 죽는 경향이 있다. 보기만 해도 케이블 성향이 대충 나온다. 그렇다고 그 비싼 오디오 케이블들을 다 잘라가면서 확인하지는 말자. 인터넷을 뒤져보면 내부 구조 정도는 친절하게 그림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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