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의 오디오

저는 원래 오디오 쪽에서 일을 할 테야 라는 생각은 전혀 없이 순수한 취미로만
오디오를 어릴 때부터 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왜 이 오디오 세상에서 일을 하는지 아쉬운 마음이 생길 때가 간혹 있어요.



그 아쉬운 마음들이 생기는 이유가.


한 4년 전인 듯싶은데, 처음으로 오디오 회사에 취직을 하고, 처음으로 판매를 하고,
처음으로 설치를 하러 갔었는데, 댁에 어린 딸아이만 있는 상황 이었습니다.
고객분과 통화를 하고, 당연히 알아서 잘 해주시요 라는 말을 듣고 설치를 했는데,
그분의 시스템은 2웨이 북쉘프 하이파이에 튜너가 추가된 시스템 이었습니다.



거실장 위에는 마치 준비라도 해 놓은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깔끔한 상태였는데,
기기들을 하나 하나 일렬로 펼쳐 놓고(전 기기들을 쌓아 놓는걸 무지하게 싫어하는데,
기기들 역시 진동을 하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위치를 잡아 주는 게 가장 좋아요.)
배선들 역시 최대한 겹치지 않게 정리를 하고(전원계통과 신호계통은 꼭 무슨 일이 있어도
겹치지 않게 하는 게 가장 좋아요.) 스피커 위치는 소리를 들어 보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셋팅을 다 하고 딸아이랑 음악을 들었는데, 상당히 좋아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악기를 다루는 아이였는데, 굉장히 집중하고선 클래식 소품을 듣는 모습이 참 이뻣어요.
그렇게 설치를 끝내고 흐믓하게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고객분께 연락이 왔어요. 와이프가 있는 대로 화가 나있다고.



그래서 결국 다시 방문, 사모님의 감독 하에
다시 위치를 잡은 게 기기는 구석에 일렬로 쌓고, 세 덩어리가 쌓여있으니 굉장히 못마땅
하다고 한 덩이로 해결할 방법은 없느냐고 막 째려 보시고
스피커는 뒷벽에 완전 밀착. 스피커 케이블 덕에 뒷벽에서 살짝 떨어진 스피커의 모습도
용납할 수 없다는 고객분의 마나님.


그 당시의 전 참다 참다 (오디오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럴 바엔 오디오를 하시지
말라는 말을 해버렸죠. 차라리 일체형 미니콤포를 사시라고 제대로 활용도 못하는
것들을, 제 능력의 반도 발휘 못하는 성황에 처한 것들을 뭐 하러 비싼 돈 주고 사시냐고
오히려 제가 정색을 하고 제품들을 해체하고는 주섬 주섬 챙겼습니다.



고객분께서 말리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전 다 챙겨서 나왔을 거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때 미쳤나 싶은데, 여태껏 이 일을 하면서 제가 생각하는
오디오관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고객분들을 전 한 번도 본적이 없어요.
정말 우울한 경우인데, 하나같이 난관에 걸리는 게 보기에 않좋다 였습니다.


그 다음이 ‘굳이 이렇게 까지 할 필요 있나요? 귀찮게.’ 와
‘뭐 이런다고 소리가 좋아져요?’ 라는 비아냥들.


처음엔 좋은 소리를 위해 서란 나만의 대의명분으로 타협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웃으며 상담하고 오디오를 팔았는데, 설치를 하면서 서로가 어색해지는
묘하디 묘한 상황을 자꾸 접하게 되더라고요.



또 그러다 보니 예전에 일하던 곳의 대표와도 자꾸 충돌이 생기고,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건 오디오밥 먹는 사람이 오디오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거였는데,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오디오를 처음 구입한 고객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잘못된 지식을
심어주면 그 고객은 나중에 엄청 고생한다는 거죠.



그 당시에는 정말 너무 스트레스 많이 받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왔는데, 지금에 전 보기 싫다 하면 보기 좋게 놓고
배선이 지저분하다 하면 깔끔하게 다 묶어 버리고, 기기들도 잘 쌓아 올리고,
스피커를 뒷벽에 뽀뽀 시키기도 잘 하고 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건 저였던 것 같아요.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 놓는 게 정답이란 타협을 합니다.
하지만 사용자 자의적으로 무언가를 원한다면 정답 얘기는 달라지겠죠.



그나마 아주 가끔 능동적으로 오디오 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거기다 그분들이 자신들의 경험으로 점점 자신만의 오디오 해답을 찾으시는
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 기분 좋구요.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으면 만난다 하는데,
서로 상반된 답을 얘기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동일한 답이 나오더라고요.


전 판매자 와 소비자가 서로가 배우고 성장 하는 모습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인데, 이런 믹스업을 전 언제나 소망합니다. (사실 이 말은 제 오디오 사부님께서 해주신 말씀)



그런 만남이 생기다 보니 이젠 손님이 아니라 호형호제 사이가 되고, 만나면 오디오
얘기는 살짝, 서로가 호호 할 수 있는 얘기들로 시간이 채워지곤 합니다.


얘기가 이상하게 자꾸 흘렀네요.


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건 음질적인 부분을 생각하니 고객의 반대가
심하고 전체적인 외관이 보기 좋으면 소리의 아쉬움이 크고 대충 이런 것들인데,


오디오쟁이들만이 소리를 위해서만 셋팅된 그 모습을 참 보기 좋다 생각합니다.


저희 어머니도 가끔 제 집에 들리시면 한창 기기가 많았던 시기엔 도대체 이게 무슨
사람 사는 곳이냐고 핀잔을 주시곤 하시는데, 두 다리 쭉 피고 잠잘 공간은 만들어 놓고
오디오 하라고 잔소리 하시곤 합니다. 어머니도 이정도 이신데, 많은 오디오 유저 분들의
안방마님들은 어떠실까요.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호호


2부에선 액세서리 와 케이블에 관한 갈팡질팡 을 해보겠습니다.

추천영화


크랭크2 (아드레날린2)



퍼니셔2 이후로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인데, 살짝 아스트랄 스토리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정말 재미있는 영화에요. 그냥 마냥 웃을 수 있는 영화에요.


전편도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이번 작 너무 재미있어요.


보다가 한번 쓰러진 부분이 특촬물 패러디 장면인데, 어릴 적 특촬물을 많이 접하셨던
분들은 제 마음 아실 거에요.


이성과는 볼만한 영화가 아닌데, 만약에 애인이나 마눌님 들이 재미있다고 막 좋아하시면
여러분께서 그분들을 이상하게 만들어 놓으신 겁니다. 반성하세요. 낄

책도 한 권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쉬는 날엔 음악 들으면서 책도 가끔 보는 편인데, 제 동생이 책을 좋아해서
많이 얻어 보는 편이에요.


처음 볼 땐 그냥 너무 웃기고 재미있어서 잘 봤는데, 나름 굉장히 큰 교훈을 주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에요. 한번 꼭 읽어 보세요. 이 작가의 팬이 된답니다.


박민규 작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