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 TAG McLaren Audio F1 AvantGrade

오디오 평론가  윤광준

자동차 공학 위에 쌓아 올린 오디오 공학

F1그랑프리에 출전하는 세계의 명차들 가운데 자동차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최고의 레이싱 머
신으로 꼽는 맥라렌F1이 있다. 맥라렉 F1이 우리에게 익숙한 기종이 아니라는 데서 이러한 평가
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32년 동안F1그랑프리 레이스에서 476경기를 통해 116
회나 우승을 한 경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어. 대단하군!”을 저절로 연발하지 않을까?
F1그랑프리라면 오디오로 치면 하이엔드 중의 하이엔드를 가려내는 각축장이다. 여기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는 맥라렌 F1의 신화를 더 얘기하는 것은 자동차를 조금 알거나 최고를 지향하며
사는 분들에겐 식상함만 더하는 일이다.
이 대단한 자동차를 만드는 맥라렌이 오디오 분야에 진출했다는 사실이 흥미를 끈다. 최고의 레
이싱 머신과 오디오. 이 둘의 연관성은 대자적이기도 하고 보완적이기도 하다. 골치 아픈 세부사
항을 모르더라도 :왜 맥라렌이 오디오에 진출했을까”하는 의문은 오디오파일이라면 관심을 가
질 만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오지랖이 넓다고 자처하는 나도 맥라렌의 실상은 잘 모르고 있다. 최고의 자
동차 맥라렌F1을 가질 만한 여우가 턱없이 모자라는 나여서 이미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
을 일지감치 포기한 탓일 것이다. 맥라렌과 나는 그 동안 상식 수준 이상의 관심을 보일 만한 계
기나 체험을 갖지 못했으므로 몰라도 전혀 미안하지 않다.
내가 맥라렌에 관해 구체적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맥라렌이 만든 스피커 F1아방가르드의 실물과
음을 듣고 나서였다. 사전 정보가 없었던 나는 스피커의 모델명과 자태에서 직감적으로 자동차와
의 연계를 떠올렦다. “이것은 오디오 엔지니어의 작품이 아니다!” 스피커의 형태와 컬러에서
오는 자동차와의 강한 연계성은 맥라렌이란 메이커의 의도를 어렴풋이나마 읽게 해주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AV대응 제품으로 기획
레이싱 카와 하이엔드 오디오! 이둘은 인간의 열정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공
통점이 있다. 일상 너머의 특별한 가치를 위해 각별한 노력이 정당화되는 점도 똑같다. 인간의
감각이 궁극이란 가상의 목표를 향해 접근해 가는 방법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궁극의 가치를 존중하는 인간의 선택이 자동차가 되건 오디오가 되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궁극
을 지향하는 출발의 공감이 더욱 중요한 요소임은 말할 것도 없다. “TAG 맥라렌”은 이해하기
위해선 최고를 지향하는 그들의 지루한 이력과 자랑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TAG 맥라렌’을 이
해하기 위해선 최고를 지향하는 그들의 지루한 이력과 자랑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TAG 맥라
렌’은 유명한 ‘태그호이어’ 시계를 만드는 TAG와 맥라렌이 1985년 이래 협력관계를 맺어 그룹
화된 것이다. ‘ TAG 맥라렌 그룹’ 산하에는 자동차와 관련 전자회사. 시계. 심지어 최고급 생
활 소품을 만드는 회사도 포진되어 있다. 이들 그룹의 관심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궁극적인 공
업 생산품을 만드는 것이다.
시대의 이상과 창조력의 조화. 인간 감성의 기술의 결합으로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제품을 만드
는 회사 쯤으로 ‘TAG맥라렌 그룹’의 성격을 규정하기로 하자. 이렇게 날고 기는 ‘TAG맥라렌
그룹’이 뜬금없이 오디오 분야에 진출하게 된 것은 오디오파일인 회사 간부의 제안으로 이루어
졌다.
1989년 초반 자동차 부품 회사인 보쉬에 재직하고 있던 ‘우드즈커’ 박사는 ‘TAG 일렉트로닉
스 시스템즈’의 창립맴버에 기용된다. 그의 역할은 F1레이싱 머신에 쓰이는 엔진의 컨트롤 시스
템 개발이었다. 우드즈커 박사가 개발한 전자 제어 시스템은 높은 성능과 신뢰성을 인정받아 여
러 F1 레이싱 팀에 공급되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무한 출력을 추구하는 고성능 엔진을 컨트롤하
기 위한 전자 제어 시스템의 중요성은 여러분의 자동차를 빗대어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자동차 관련 일렉트로닉스 시스템의 개발자인 우드즈커 박사는 독일인으로 음악과 오디오에 조예
가 깊은 열광적인 오디오 파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유로 ‘TAG 맥라렌 그룹’의 사장에게 93
년 맥라렌 퀄리티의 오디오 기기 개발을 제안하게 된다. 우드즈커의 제안을 받아들인 사장은 맥
라렌의 명성과 지향에 걸맞는 오디오 기기의 개발과 마케팅을 전제로 오디오 분야에 진출하기로
결정한다.
오디오 파트의 책임자가 된 우드즈커는 파트너가 될 영국 내 오디오 메이커를 물색했고 우리에
게 친숙한 오디오랩이 물망에 오른다. ‘TAG 맥라렌 그룹’은 곧 오디오랩을 인수. 합병하여
‘TAG 맥라렌 오디오’를 탄생시키게 된다. 이러한 이력은 ‘TAG 맥라렌 오디오’를 파악하는 중
요한 단서이고 향후의 행보를 예측하는 근거가 된다.
역동적 에너지와 감성적 아름다움.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의 조화와 결합. 상반된 특성을 지닌
자동차와 오디오는 97년 실험적 동거에 들어가게 된다. 실적을 검증 받은 기존 오디오 메이커와
최고의 스피드를 지향하는 자동차 메이커. 둘의 아이디어와 역량을 더해 만든 참신한 제품들은
하이엔드 오디오의 퇴조에도 불구하고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TAG 맥라렌 오디오’의 제품 라인업은 4개의 등급으로 나누어진다. 자동차 관련 제품을 생산하
던 메이커답게 시리즈 이름은 F1. F2. F3의 기능을 통합시킨 아방가르드로 붙여 놓았다. 레이싱
의 최고 수준이 F-1인것처럼 ‘TAG 맥라렌 오디오’의 탑 시리즈 역시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
다. 어딘가 흔적을 남기는. 출신의 속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이들 각 시리즈는 CDP. 인티앰프. 분리형 앰프. 스피커에 이르는 오디오 전 파트를 포함하고 있
는 점도 이채롭다. 국내에 수입된 각 시리즈는 사용자의 취향과 가격대에 따라 선택 폭을 크게
넓혀 놓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AV 대응 제품으로 기획된 것에 주의하기 바란다. 자동차의 디
자인과 색채 같은. 육감적 아름다움이 오디오에 그대로 적용되었으면 하고 바랐던 분들은 그야말
로 식성에 맞게 골라들기만 하면 된다.
스테레오파일의 수준 높은 독자를 위해 내게 하명(?)된 기종은 평소 관심 높았던 F1아방가르드
스피커를 주축으로 한 시스템이다. 스피커의 격조에 걸맞은 앰프의 조합은 아니지만 동사의 아방
가르드 DVD32R CD/DVD플레이어. AV32R AV프로세서. 100*5R 파워 앰프로 구동했고. 태그 맥라렌만
의 청취 및 시청을 마친 후에는 파워 앰프를 BAT VK-75SE로 바꾸어 구동해 보았다. 그 외에 영상
은 DWIN의 TV2 DLP 프로젝터. 뷰텍 스크린이 설치된 시청실에서 영화와 음악을 들어볼 수 있었
다.
음향상태가 좋은 잘 설계된 <스테레오 파일 & 홈시어터>의 시청실에서 여유를 갖고 맥라렌 제품
의 진가를 온몸으로 느껴보기로 한다. 우선 시선을 강하게 끄는 스피커의 푸른 색채는 기존 메이
커들이 시도하지 못했던 파격을 담고 있다.
게다가 유려한 굴곡과 안쪽으로 휘어진 비정형의 자태는 “뭔가 보여 주려 한다”는 의도를 강하
게 풍긴다.
실제의 크기보다 작아 보이는 디자인으로 일부러 설계했다고 하지만 곡선이 주는 풍만함은
“한 번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을 저절로 일게 한다. 음악을 듣기 위해 몇 미터의 거리에 떨어
져 물그러미 쳐다보고 있으면 이내 “안아보고 싶다”로 발전될 만큼 스피커의 형태는 육감적이
다.
F1아방가르드에서 성욕을 느꼈다면 공감하실 수 있으신지? 오래전 JBL K2 스피커가 주는 아크릴
혼의 관능과 핑크 빛 색채에 빠져 스피커와 섹스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 K2의 설계
자는 스피커를 여성과 동일시하는 상대의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음의 교감을 형태로 증폭
시켜 주는 그 절묘한 에스컬리에트는 스피커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간주시키기에 충분했다.
F1 아방가르드 역시 섹시함이 넘치는 스피커다. 곡면의 굴곡에 비쳐지는 매끄러운 청색 메탈릭
도장의 광택. 비스듬히 누여져 보호본능을 발동시키는 교묘한 불안감. 스피커의 자태에서 갑자
기 하리수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연상일가? 성 정체성이 불분명하게 느껴지는 하리수
의 양성애적 아름다움 같은 공통점이 있다. F1아방가르드의 자태는 신선하고 예쁘고 섹시하다.

신선하고 예쁘고 섹시한 디자인
태생이 태생이니 만큼 F1 아방가르드에서 자동차와의 연관을 지울 방법은 없을 것 같다. 센터 스
피커의 포름은 포뮬러 카의 뒷부분을 연상케 한다. 다시 들여다보는 스피커의 표면은 아무리 봐
도 자동차의 일부처럼 보인다. 피아노피니시의 광택도 F1 아방가르드의 투명함을 따라오지 못한
다.
화려한 색채와 메탈릭 도장의 매끄러움 뿐 아니라 인클로저에 투입된 기술또한 F1레이싱을 통해
축적된 콤퍼지트테크놀러지의 산물이다. 이는 유리섬유와 카본 섬유. 기타 여러 소재를 적절하
게 섞어 가볍지만 높은 강도를 지닌 재질로 알려져 있다.
신소재의 채탁은 윌슨 베네시가 구사하던 카본 파이버 재질 인클로저 테크놀러지와 통하는 새로
운 경향의 스피커 디자인이라 보면 되겠다. 인클로저를 두드려 보면 의외로 얇은 듯한 경쾌한 소
리가 난다. 자체 질량을 높여 강도를 높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부 구조는 의외로 복
잡하고 교묘하게 설계되어 있다. 얇은 판을 3중으로 덧댄 콤퍼지트 구조와 격자처리로 보기보다
훨씬 높은 강도를 지니고 있고. 중요 공진 부위엔 광물 분말을 섞은 에폭시 레이진을 채워 넣었
다. 콤퍼지트 테크놀러지는 자유로운 형태의 성형이 가능하다. 굴곡과 커브를 가진 인클로저 디
자인은 형태에 의한 자체 강도를 높일 수 있고. 공진 모드를 분산시키며. 내부 정재파를 획기적
으로 줄여준다. 게다가 각을 없애고 둥글려진 인클로저 모서리는 음의 확산을 자연스럽게 유도시
키는 특징이 있다.
낮설어 보이는 독특한 형태는 새로운 디자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음향적이점을 위해 기능과
디자인을 결합시킨 기술적 접근의 산물이란 점을 잊으면 안된다.
소스 기기와 앰프 역시 차별적 디자인과 기능성을 갖추고 있다. 슬라이딩 커버로 처리된 멀티 플
레이어. 편의성과 높은 기능을 콤팩트하게 완성시킨 앰프 디자인은 TAG 맥라렌 오디오의 개성을
한눈에 들어오게 한다.
아방가르드 한 형태의 스피커와 영국풍 디자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앰프 조합으로 들려주는 음은
의외로 차분하고 정감 넘치는 음을 들려준다. 레이싱 머신의 폭발적 에너지와 굉음이 펼쳐질 듯
한 선입견을 깨끗이 씻겨 나간다. 최종의 음은 인위적 가미를 느낄 수 없는 자연스러움과 위압적
이지 않은 양감으로 펼쳐져 나온다.
<글래디에이터>전투 장면의 DTS 사운드는 고밀도 음향으로 전장의 박진감을 사실감 넘치게 재현
시키고 있다. 공간을 빈틈없이 메워주는 음향의 포만감은 화면으로 느끼는 리얼리티를 훨씬 더
능가한다.
녹음 효과가 극대화된 데모용 DVD는 음 향의 차이를 즉각적인 반응으로 이끌어 낸다. 금속성 자
극이 없는 고품위 고역(이 정도 가격대의 제품이라면 당연한것이지만)은 B&W의 매트릭스사운드
에 버금가는 음향을 펼치고 있다.
글렌 굴드의 오래된 녹음 실황을 담은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익숙하게 들어 기억하고 있는 그
의 연주를 바고 앞의 현재로 환원시키고 있다. 이 곡의 느낌은 2채널 사운드보다 분명 “훨씬
더 낫다”라고 할 수 있다.
DVD로 음악을 듣는 것은 ‘불경스러운 짓’이라는 고정관념이 내겐 아직도 남아 있다. 순수 오디
오(이런 구분이 옳은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CD로 음악을 들어본다. 자세를 고쳐 앉았음은 물
론이다. 녹음이 잘된 ‘야신타’의 곡을 듣는다. 시각적 일루전이 전개되는 맑고 투명한 음 대
신 언젠가 인상적으로 들었던 중역의 밀도감과 질감이 돋보이는 과거의 좋았던 음을 느낄 수 있
다.
순화된 음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마일드하고 차분한 사운드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하베스
스피커의 음감과 음촉을 떠올리게 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낮선 장소에서 지인을 만난 듯한
반가운 음을 다시 듣고 있는 것이다. TAG 맥라렌 오디오 이미지와 사운드는 적어도 나의 판단 안
에서는 충돌하고 있다. 첨단의 테크놀러지가 영국의 오랜 오디오 전통과 경험에 접목된 결과로
는 당연한 것 아닐까? 오디오는 테크놀러지가 아니라 인간의 선택이 만들어낸 예술이라 믿고 있
는 나의 확실한 추측이다.
F1아방가르드가 들려주는 사운드는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가 만들어낼 수 있는 선택적 유형(전성
기의 브리티시 사운드)의 고급 버전이라 해도 좋다. 야신타의 노래는 분명 습기를 머금어 반짝거
리는 입술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거슬거술한 목소리의 질감은 스피커의 자태에 녹아들어 여자
의 알몸으로 조립되고 있다. 사운드와 스피커가 이처럼 유기적 융화의 순간을 만들어주는 체험
은 흔치 않다.
나는 분명히 F1아방가르드 사운드를 들으며 연상에서 오는 성욕을 느끼고 있다. 어둑한 조명은
황홀한 도취의 순간을 야릇한 무드로 바꾸어 주고 있다. 스피커와 섹스하고 싶다는 욕망은 K2 이
래 15년이 훨신 넘어서야 다시 치밀어 오를 만큼 강렬했다. 대출력 진공관 앰프 BAT를 물려 다
시 듣는 F1아방가르드는 야신타의 목소리를 더욱 농염하게 만들어준다. 소파에 기대 점점 파묻혀
가는 자세가 되고 눈을 감은 머릿속은 야신타의 몸을 더듬고 있다. 관능적 형태와 음의 일치가
가져다준 황홀감은 오르가즘이 되어 끝을 맺었다.

–  스테레오 파일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