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의 스펜더 그리고 BC3의 부활 – 스펜더(Spendor) SP200 Classic

 
 

음악과 오디오, 과학과 감성 사이

 

오디오 관련 칼럼니스트로 지내면 대부분 주변에 오디오 환자(?)들만 득시글거릴 것 같지만 나 같은 경우엔 오히려 음악 애호가들이 대다수다. 더 넓게 잡는다고 해도 애초에 기계 따위에 관심이 있어 자동차에 이어 오디오에 취미를 붙인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처음부터 록이면 록, 재즈면 재즈 또는 일부 클래식 등 음악을 벗 삼아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삶에 지치고 외로울 때 커다란 힘은 오디오가 아니라 음악 자체로부터 나온다는 것에 대해 굳건한 믿음이 있다. 따라서 이를 재생하는 오디오 선정에 있어서도 자신의 뚜렷한 음악 취향을 근간으로 매우 독특한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한다. 단지 비싸고 평균적인 성능이 높은 하이엔드 오디오가 아니라 조금은 색다른 조합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런데 종종 그들 중 하이엔드 오디오에서 빈티지 시스템으로 컨버전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한결같이 요즘 오디오는 음악이 음악처럼 들리지 않고 자꾸만 분석하게 된다는 것. 또한 모든 장르에 평균 이상의 사운드를 만들어내지만 자신이 정작 좋아하는 1950~60년대 재즈, 클래식 음악에서는 특별한 개성을 찾기가 힘들다는 얘기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결국 선택하는 것 중 대부분은 영국산 빈티지 스피커들이다. 탄노이, 하베스, 스펜더, 로저스 등이 줄을 잇는다. 앰프는 쿼드 진공관 앰프, 리크 또는 초기 네임오디오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깊은 과거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로운 세계, 그곳에 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음악의 본질이 있다고 믿는다.

 

 

 

오디오는 단순히 전기, 전자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단순히 생활 편의를 위해 ‘기능’하는 전자제품과 다른 이유다. 단지 정확한 입/출력 수치와 탁월한 트랜지언트 능력, 마치 그림처럼 플랫한 주파수 응답 곡선을 원한다면 최신 하이엔드 제품이나 스튜디오 모니터가 정답일 수 있다. 그리곤 대게는 머니게임으로 허탈하게 끝나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 즉 대중문화 콘텐츠의 일부를 다루기 때문에 과학적인 이론만 가지고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어찌 보면 매우 아이러니한 분야이기도하다.

 

스펜더 같은 경우도 이러한 기술과 감성의 조화 사이에서 기술보다는 감성적인 부분에 무게추가 기울어져 있는 메이커다. 현재 스펜더를 이끌고 있는 필립 스위프트는 인터뷰 때마다 너스레를 떨곤 한다. 자신들은 절대 더 현대적인 디자인과 설계의 제품을 만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스펜더가 기조로 삼았고 그들의 고객들이 원하는 음악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설계와 디자인을 할 뿐이라고. 그리고 좀 더 젊은 오디오파일을 위해서는 클래식 시리즈가 아닌 별도의 라인업을 따로 만들어 좀 더 패셔너블한 디자인의 스펜더 스피커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플래그십 SP200

 

그만큼 과거 스펜더의 뿌리가 되었던 BBC 모니터의 각 모델을 그대로 계승해온 클래식 라인업의 무게감은 매우 무거운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그 무게가 절정에 다다른 클래식 라인업의 새로운 플래그십 스피커를 내놓았다. 단지 LS 3/5, BC1 등에 그쳐있던 BBC 모니터 스피커 라인업의 리메이크를 넘어 플래그십 BC3 의 리바이벌이 이루어졌다. 모델명은 SP200 으로 결정되었다.

 

많은 영국 메이커들이 중국의 IAG(International Audio Group)으로 제조 공정을 옮긴 와중에도 꿈적하지 않는 스펜더는 여전히 자국 생산을 고집하고 있다. 영국 헤일샴에 위치한 스펜더 공장에서는 모든 스피커 캐비닛은 물론 유닛 제조까지 독자적인 공정을 유지하고 있다. 단지 겉으로 보기엔 과거 제품들의 리메이크에 불과한 듯한 심플한 디자인이지만 알고 보면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진화해오고 있는 그들이다.

 

이번에 출시된 SP200 의 면면도 그러한 독자적인 설계과 디자인 철학이 짙게 묻어나온다. 1973년에 출시되었던 BC3를 모태로 하는 SP200 은 기존 플래그십 모델인 SP100R2 의 스케일을 크게 상회한다. 우선 12인치 우퍼를 무려 두 발이나 장착하고 나섰다. 최근 하이파이 스피커들이 대구경 우퍼를 지양하고 소구경 우퍼를 다발로 구성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벡스트린 콘엔 케블라 합성 섬유 소재의 스테빌라이저 돔이 장착되어 있으며 전면 배플 상/하로 나란히 위치한다. 스펜더에서 개발해 채용하면서 브리티시 모니터 스피커 씬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온 벡트스린 콘. 스펜더는 무려 40여년간 진화시켜온 이 유닛을 바꿀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SP200에서는 12인 두 발을 사용하면서 SP100을 뛰어넘는 매우 낮은 저역까지 기대할 수 있다.

중역을 담당하는 유닛은 EP77 이라는 형번으로 역시 스펜더 자체적으로 개발한 드라이버다. 폴리머 재질 콘을 채용하고 있으며 캐스트 마그네슘 합금 섀시가 적용되어 있다. 그리고 내부엔 매우 효율이 높은 모터 시스템을 내장하고 있다. 고역을 책임지고 있는 트위터는 소프트 돔 트위터 타입으로 맨 상단의 미드레인지 유닛과 베이스 우퍼 사이에 위치한다. 22mm 구경의 폴리아미드 소재 돔 트위터는 매우 넓고 깊은 방사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 SP200 이라는 스펜더의 플래그십 스피커에서 포착되는 가장 특별한 점은 캐비닛이다. 프론트 배플 등을 포함해 각 면마다 다른 두께의 MDF를 사용하며 내부 브레이싱은 매우 얇은 목재를 사용한다. 또한 내부엔 점성이 높은 독자적인 댐핑 소재를 각 벽에 덧칠하는 등의 내부 댐핑 컨트롤에 세심한 신경을 쓴다. 그런데 이번에 가장 큰 변화는 캐비닛 자체를 밀폐형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과거에도 미드레인지를 별도의 밀폐형 챔버 안에 설계하곤 했으나 전체를 밀폐형으로 설계한 것은 이례적이다. 대체로 작은 사이즈의 북셀프에서 낮은 저역을 재생할 수 있도록 설계할 경우 유용한 것이 밀폐형 설계로 이처럼 커다란 스피커에서 밀폐형 설계는 영국 스피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를 들어 밀폐형 설계로 유명한 ATC 도 상위 풀레인지급 플로어스탠딩은 저음 반상형 설계가 일반적이다.

 

아마도 스펜더는 풀레인지급 대역 소화 능력을 갖되 매우 낮은 대역까지 정교하게 재생 가능한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스펜더가 대외적으로 발표한 스펙만을 보면 SP200 은 목표에 안전하게 연착륙한 것으로 보인다. 3웨이 플로어 마운팅 타입으로 포트가 존재하지 않는 밀폐형 설계로 무향실 기준 ± 2dB 조건에서 저역이 20Hz 까지 뻗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고역은 25kHz 로 가청한계선을 약간 넘는 수준. 크로스오버 포인트는 중역과 저역을 550Hz에서 나누고, 중역과 고역을 5kHz에서 교차하도록 설계했다.

 

공칭 임피던스는 8옴에 최저 6.2옴이 마지노선으로 임피던스는 아주 낮게 내려가지 않는 편이다. 능률도 밀폐형임을 상기할 때 그다지 낮지 않다. 스펜더가 발표한 SP200 의 능률은 89dB 다. SP200은 플로어 스탠딩 또는 플로어 마운팅이라고 표기하곤 하는데 플로어스탠딩이 적절할 듯 하다. 우선 키가 110cm 로 성인이 앉은 자세에서 절대 낮지 않기 때문이다.

 

 

 

성능 및 음질 테스트

 

시청은 심오디오 740P 프리앰프와 860A 파워앰프 그리고 로텔 RC-1590 과 RB-1590 프분리형 앰프들이 동원되었다. 소스기기는 오렌더 N10 과 심오디오 문 에볼루션 650D를 사용했음을 밝힌다.

 

 

 

먼저 시험 삼아 레베카 피존의 ‘Spanish harlem’ 이나 제니퍼 원스의 ‘Way down deep’ 등을 재생해보았다. 12인치 벡스트린 우퍼의 위력은 대단하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기를 뛰어넘는 저역 스케일이 펼쳐진다. 매우 헤비한 양감의 저역을 좋아한다고 해도 전용 철제 스탠드는 필수다. 제조사에서는 단지 파워풀한 솔리드스테이트 및 진공관 앰프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 두발의 우퍼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높은 출력에 솔리드스테이트가 어울린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저역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저역 해상력이 매우 낮아질 위험이 크다. 보컬은 중앙에 약간 크게 잡히며 약간 ATC 같은 끈적한 보컬 질감이 전면에 드러난다. 중역대역의 흡입력이 매우 크게 두드러지며 저역부터 고역까지 밸런스는 SP100 보다 약간 더 아래로 내려와 무척 묵직하고 규모가 큰 스케일을 만들어낸다.

 

 

 

토토의 ‘Africa’ 같은 산뜻한 리듬의 팝음악에서 저역의 느낌은 흡사 성인 머리만한 해머로 바닥을 내리찍듯 두텁고 에너지감이 높다. 정교하고 빠르게 때리고 흩어지는 저역이 아니다. 개방감 있고 풍성하게 그러나 하모닉스를 공간에 자연스럽고 풍부하게 채워 넣는 사운드다. 어설픈 출력의 진공관 앰프와 매칭시 부밍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대출력에 전원부가 충실한 분리형 앰프를 매칭했을 경우 매우 여유있고 포만감 넘치는 저역 임팩트는 양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한 음 한 음에 힘이 실려 있어 매우 중량감 넘치는 저역이 시청실을 울린다. 온기를 머금은 풍윤한 음색에 끈적이는 사운드 표면 텍스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역은 자극 없이 담백하다.

 

 

 

솔 가베타와 엘렌 그리모의 듀오 앨범을 들어보면 콘트라 베이스의 기음이 그 어떤 스피커보다 깊은 에너지감으로 흘러넘친다. 두터운 보잉이 강력하면서 밀도 높게 공간을 휘젖는다. 스테이징이 매우 정교하게 펼쳐지진 않지만 이를 뒤덮을만큼 음색적인 특성이 매우 매력적이다. 특히 중역 대역의 밀도감과 찰진 표현력은 ATC 의 그것을 연상시킬만큼 압도적이다. 매우 굵직하고 따스한 현악의 울림이 커다란 파도처럼 꿈틀거린다. 마치 오랫동안 마을 한가운데를 철옹성처럼 믿음직하게 지켜온 커다란 나무의 몸체에서 흘러나올법한 그윽한 사운드다.

 

 

 

핑크 플로이드의 ‘In the flesh’에서 흘러나오는 아코디언 소리마저 그윽하며 이후 결합하는 드럼과 기타, 키보드가 합세한 연주에서 매우 강력한 어택은 매우 진한 음색으로 바닥에 깔리며 묵직하게 질주해온다. 마치 가볍게 음원을 듣다가 저출력 MC 카트리지로 딥 그루브 LP를 듣는 듯한 깊고 웅장한 중, 저역이다. 앰프나 소스기기가 제대로 서포트해주지 못할 경우 저해상도에 매우 뭉뚝한 소리를 내줄 위험도 충분하므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반대로 심오디오의 저역 드라이빙 능력이 소리 없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무게감 넘치는 심장박동은 SP100 과는 또 다른 차원의 천둥 같은 임팩트를 만들어낸다. 민첩한 스피드와 완급조절이 분명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매크로 다이내믹이 뛰어나 각 악기의 존재감이 뚜렷하며 움직임이 크게 느껴진다. 최근 들어 자주 들을 수 없었던 대구경 우퍼만의 쾌감이 몸으로 전해진다.

 

 

 

칸타테 도미도에서 소프라노 독창은 마치 성량이 확장된 듯 매우 풍부하고 묵직하며 존재감이 더욱 커다란 소리로 제법 커다란 리스닝 공간을 꽉 메운다. 보컬에서 특히 그 장점이 부각되는데 소프라노 보컬의 입술 정도가 아니라 몸통 전체가 그려질 정도로 압도적인 성량과 넓은 중역 대역의 디테일이 돋보여 매우 무게감 있게 들린다. 맑고 청아하며 세밀한 디테일과 정위감 중심의 입체적인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들과는 애초에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저역 구간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파이프 오르간 사운드는 발밑까지 떨어질 정도로 깊고 무척 깊고 풍부하다. 게다가 그 양과 크기가 커 시청실 바닥을 채우며 흘러넘친다. 정교한 정위감 위주의 섬세함을 주무기로 하는 최근 스피커에 길들여져 있다면 오히려 이색적일 수도 있는 소리며 호불호도 분명히 갈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온도감과 커다란 중, 저역 스케일 등 어떤 하이엔드 스피커에서도 느낄 수 없는 음색적인 질감이 끈적이며 저역의 한 방이 꿈틀댄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꽤 커다란 공간이 필요할 것 같다.

 

 

 

 

총평

 

스펜더는 현재까지 클래식 라인업을 별도로 편성해 BBC 모니터의 계보를 충실히 이어나가고 있는 메이커다. 더 자세히는 현재까지 SP100R2를 중심으로 SP1/2R2, SP2/3R2, SP3/1R2, S3/5R2 등 고정된 라인업 편성으로 수년에 한 번 정도로 그 출시 간격이 넓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매우 분주해 보인다. 빈티지 에디션을 내놓고 영국 내에서 프로모션이 활발하다. 클래식 라인업은 오랫동안 클래식 라인업을 사랑해온 사용자의 배려와 전통의 계승이라는 측면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기존 모델의 계량 버전 출시 외에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새로운 모델 출시에 한 방 먹은 기분이다. SP200 의 출시가 전통적인 브리티시 모니터 스피커 지형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기대된다.

Specifications

sensitivity                                       89dB
impedance (min. 6.2 ohms)         8 ohm
typical in-room response              20Hz – 25kHz.
dimensions (H x W x D)                43″ x 14.5″ x 20″
weight                                           120 lbs. e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