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가의 향기를 담은 걸작, B&W 705 Signature 리뷰

명품은 중고 시장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명품을 표방하는 메이커가 한 둘이 아니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커가 있는가 하면, 당찬 도전을 하는 쪽도 심심치 않게 만난다. 모두 자기네가 최고라고 떠들지만, 그 속내는 알 수가 없다. 그런 가운데 승용차를 예로 들면 어떻게 될까? 최근에 유튜브에서 본 영상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중고차 시장의 고수가 이런 말을 했다. 만일 당신이 중고 외제차를 산다면, 눈 딱 감고 하나의 브랜드만 고르십시오. 그게 바로 벤츠입니다.

그렇다. 실제로 명품이냐 아니냐는 중고 시장에서 결정된다. 같은 100만 원을 주고 산 제품이라고 해도, 브랜드로서 확립된 메이커를 선택하면, 역시 중고 시장에서도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다. 차량의 경우 벤츠, 시계는 롤렉스, 앰프는 매킨토시. 그럼 스피커는? 당연히 B&W다.

사실 가끔 우리나라 중고 오디오 시장을 살펴보곤 하는데, 나왔다 하면 곧바로 팔리는 것이 B&W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신제품이 나와도 쉽게 쉽게 거래가 이뤄진다. 적어도 매킨토시와 B&W는 현찰이다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인기의 비결이 단순히 이름값 때문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하나의 상품으로서 일종의 완결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성능에 그치지 않고, 만듦새, 디자인, 내구성 그리고 AS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브랜드가 명품이 되기 위한 여러 조건들이 완벽하게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해당 브랜드만의 스토리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배경을 업고 이번에 등장한 B&W의 신작은 바로 705 시그니처다. 높은 가성비를 갖고 있는 700 시리즈를 개량했다는 점이 일단 눈길을 끌고, 가격적인 면도 좋다. 실제 외모를 보면 뭔가 야심만만하게 기획되어 만들어졌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근데 왜 시그니처 버전을 런칭한 것일까, 궁금증이 인 것도 사실이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알아보자.

 

새로운 700 시리즈의 시작

사실 우리가 B&W라고 하면, 대번 800 시리즈부터 떠올린다. 당연하다. 그간 여러 차례 개량을 거치면서, 매트릭스 구조를 쓰기도 하고, 과감하게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동원하는가 하면, 요즘엔 콘티늄 소재의 진동판을 미드레인지와 우퍼에 투입하고 있다. 늘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제품으로 마무리하기 때문에, 구형 제품들도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장 상황을 보면, 아무래도 가격이 부담스러운 800 시리즈보다는 700 시리즈에 눈길이 간다. 사실 일종의 주니어 기로 개발된 700 시리즈지만, 가성비를 생각하면 상당히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 단, 다이아몬드 트위터와 같은 비싼 드라이버를 장착하지 못할 뿐, 그에 준하는 성능의 카본 돔 트위터를 개발하고, 콘티늄 드라이버를 투입하는 등, 여러 면에서 동급 대비 최상의 퍼포먼스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냥 사진이나 보고, 전시장에서 들으며 800 시리즈에 대한 꿈만 꾸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700 시리즈의 존재는 여러모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번에 시그니처 시리즈로 바뀌면서 또 한차례 진화를 이룩한 점은 그런 면에서 매우 반갑기만 하다.

B&W 700 시리즈 시그니처 소개 영상

이번에 런칭된 제품은 총 두 종으로, 702와 705가 그 주인공이다. 702는 무려 세 발의 우퍼를 탑재한 당당한 플로워 스탠딩 타입으로, 마치 전천후 폭격기와 같은 모습이다. 보기만 해도 장대한 사운드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본 기 705는 날렵한 제트기를 연상하지만, 이것은 이것대로 장점을 갖고 있다. 아마 다른 형번의 제품도 차례차례 시그니처 버전으로 올라갈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부터 본 기 705 시그니처만이 갖고 있는 매력과 장점을 두루두루 살펴보기로 하겠다.

 

솔리드 바디 트위터의 탑재

우선 외관상으로 눈에 띄는 것은 본체 상단에 별도로 달려있는 트위터부다. 가끔 동사는 이런 형식의 제품을 간간히 발표해온 것도 사실이다. 동사의 창립 25주년을 기념해서 나온 시그니처 25를 기억하는가? 그렇다. 바로 그 제품에 기원을 둔 것으로 보이는데,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이 많다. 또 이렇게 보면, 702 시그니처는 시그니처 30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게 단순한 리바이벌에 그친 것일까? 절대 아니다.

사실 시그니처 25의 경우, 발매 후 정말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랑받았다. 지금 들어봐도 매우 투명하고, 다이내믹한 음을 들을 수 있었는데, 뭐 좀 안다는 고수들은 이 스피커를 들이면 한동안 바꿈질 생각을 멈출 정도였다. 물론 그간 명맥이 끊긴 것같아 섭섭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 705 시그니처로 찬란하게 부활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솔리드 바디 트위터(Solid Body Tweeter)

본 기는 2웨이 타입이다. 외관상의 특징은 상부에 별도로 얹은 트위터부가 우선 떠오른다. 이것은 솔리드 알루미늄 블록을 절삭 가공해서 정성스럽게 다듬은 것으로, 이 가격대의 제품으로는 믿을 수 없는 물량 투입이다. 동사는 이것을 솔리드 바디 트위터라고 부른다. 앞으로 700 시그니처 시리즈의 상징이 될 것같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피니시. 동사는 이것을 “다툭 글로스”(Datuk Gloss)라고 부른다. 정말 수려하고, 멋진 외관이다. 이게 과연 700 시리즈가 맞아? 이 가격표로 이런 마무리가 가능한 거야?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진짜로 소유의 기쁨을 배가시키는 럭셔리한 모습이다.


여기서 드라이버 구성을 잠시 살펴보자. 트위터는 1인치 사양으로, 상당한 고품질의 카본 돔이 투입되었다. 마치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접하는 것처럼 핀 포인트가 정확하고, 디테일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가격적인 압박을 생각할 때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한편 미드 베이스는 6.5인치 구경. 최근에 동사에서 전가의 보도로 활용하고 있는 콘티늄 콘이 쓰였다. 가벼우면서 밀도가 높고, 자연스런 음을 자랑한다. 사실 본 기에서 재생되는 음의 대부분은 여기서 처리한다. 일종의 풀 레인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또 본 기의 경우, 중역과 저역을 나누는 데에서 오는 이질감이나 부조화가 없어서, 이것은 이것대로 매력이 있다. 어지간한 3웨이보다 잘 만든 2웨이를 더 선호하는 분들이 많은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크로스오버를 새롭게 설계해서, 기존의 705와 비교하면 상당한 개량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전 모델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시그니처 버전으로 가볍게 그 허들을 뛰어넘고 있다. 실질적으로 많은 애호가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가격대의 제품이라, 특별히 만전을 기해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래서 본 기는 88dB의 감도를 갖춘 8오옴짜리 스피커가 되었다. 특히, 어떤 경우에도 3.7 오옴 이하로 떨어지는 법이 없다. 이것은 다시 말해 앰프에 대한 부담을 확 줄였다는 뜻이다. 실제로 메이커에선 30~120W 정도의 출력이면 충분하다고 밝히고 있다. 뭐 이 정도면 가뿐할 것이다. 앰프 친화적이라는 부분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라지 않다. 참고로 담당 주파수 대역은 50Hz~28KHz. 그러나 이보다 좀 더 넓다고 보면 된다.

 

본격적인 시청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이번에는 좀 거창한 시스템이 동원되었다. 그런 면에서 약간 부담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100W 정도의 출력을 갖는 인티 앰프로 충분하다. 이 점을 감안하면서 이번 시청기를 접했으면 싶다. 앰프는 매킨토시의 MA9000이며 소스기는 린의 셀렉트 DSM. 꽤 호화로운 구성이다. 그런 면에서 본 기의 가능성을 한껏 파헤친 매칭이라 하겠다. 참고로 시청 트랙은 다음과 같다.

– 그리그 ‘페르귄트’ 에사-페카 살로넨 지휘
– 스트라빈스키 ‘불새 중 Danza Infernal’ 피에르 불레즈 지휘
– 사라 맥라클랜 ‘Angel’
– 에이미 와인하우스 ‘You Know I’m Not Good’

ESA-PEKKA SALONEN – PEER GYNT ‘Grieg’

우선 그리그부터. 널리 알려진 곡이라 새삼 설명이 필요 없지만, 이런 대편성을 전혀 무리없이 재생하는 모습이 일단 보기 좋다. 우려했던 저역의 표정이 잘 살아있고, 개방적이면서 풍부한 고역은 뒷맛이 개운하다. 전망이 좋고, 골격이 튼튼하면서, 일종의 미음을 낸다. 듣고 있으면 북구의 신화가 떠오르기도 하고, 신비한 절경을 연상케도 한다. 기분좋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음이다.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이 곡의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Pierre Boulez – Danza Infernal ‘STRAVINSKY THE FIREBIRD’

이어서 스트라빈스키. 정말 무섭게 치고 온다. 마치 불새가 하늘 높이 날아서 불을 뿜으며 성을 공격하는 듯하다. 지옥의 뜨거운 불길과도 통한다. 온 몸이 후끈 달아오를 정도의 맹렬한 기세를 자랑한다. 모든 악기가 최대의 볼륨으로 아우성치고, 여기저기서 폭격 음이 들리며, 어마어마한 다이내믹스가 펼쳐진다. 그런 장대한 모습도 그려내지만, 그 한편으로 정교치밀하게 각 악기의 포지션을 포착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기본기가 매우 튼실한 제품임을 실감한다.

 

Sarah McLachlan – Angel ‘Surfacing’

사라의 곡은 여러 차례 들었지만, 본 기로 듣는 맛도 각별하다. 일단 풍부한 그랜드 피아노의 음향. 정 중앙에 위치해서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거창하고, 매혹적인 음향을 자랑하는데, 특히 긴 잔향까지 포착해서 감상의 묘미가 배가된다. 보컬 자체는 곡 제목처럼 천사와 같다. 은은하면서 감칠 맛이 난다. 천상의 목소리가 이런 것일까? 계속 이런 음악을 듣고 싶게 만든다. 농후한 음악성을 자랑하는 순간이다.

 

AMY WINEHOUSE – You Know I’m No Good ‘BACK to Black’

마지막으로 에이미 와인하우스. 사라와 전혀 계열이 다른 가수인데, 이쪽은 이쪽대로 매력이 있다. 사실 너무나 짧고 화려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녀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새삼 그녀의 천재성에 감탄하게 된다. 베이스 라인이 풍부하게 연출되는 가운데, 다양한 관악기의 돌출이 휘황찬란하고, 보컬의 존재감도 각별하다. 정말 오소독스하게 악기와 보컬이 엮인 모습이 기분좋게 펼쳐진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굳이 업그레이드 욕망이 없이 오랜 시간 즐길 수 있을 것같다. 왜 시그니처 버전을 냈는지, 이런 감상을 통해 충분히 납득이 간다.

 

결론
사이즈만 생각하면 아쉬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내용은 놀랍기만 하다. 일종의 하이엔드 제품으로 봐도 무방하고, 해상도와 디테일, 다이내믹스 등이 역시 발군이다. 마치 포르셰와 같은 작지만 알찬 성능을 가진 머신을 접하는 듯하다. 앰프친화적인 부분도 지적할 만한데, 이왕이면 출력은 높지 않더라도 퀄리티가 뛰어난 제품을 고르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이번 시청은 최대 토크로 달리는 모습을 확인한 셈이라, 정반대의 접근법도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말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제품이라 하겠다.

이종학(Johnny Lee)

출처: Hifi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