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레퍼런스의 탄생, 에소테릭(Esoteric) F-03A 인티앰프 리뷰

지난 2007년 일본 굴지의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 에소테릭(Esoteric)은 브랜드 창립 20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해 에소테릭은 몇 가지 기념 모델을 출시했다. SACD 플레이어 SA-10과 함께 당시로서는 생소한 클래스 D 앰프 AI-10이 그 주인공이었다. 또한 에소테릭으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마그네슘 다이어프램을 채용한 MG-20 및 MG-10을 출시한다. 그리고 다음해인 2008년 10월 드디어 티악 에소테릭에서 에소테릭으로 회사명을 바꾸고 완전히 독립된 하이엔드 메이커로 비상하기 시작했다.


에소테릭은 일본을 대표하는, 흔치 않은 하이엔드 메이커였다. 디지털 장비를 많이 사용해보면 에소테릭의 그 환상적인 기구적 완성도, 조작감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VRDS로 대표되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메커니즘을 채용한 정밀공학의 진수 SACD/CD 트랜스포트는 오디오 애호가들의 로망을 정확히 저격했다. 정숙한 트레이의 움직임, 탱크처럼 튼튼하고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로봇 같은 디자인은 실로 독보적이었다. 성능 또한 훨씬 더 비싼 영/미권 하이엔드와 대적할 수 있는 아시아의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에소테릭의 본격적인 하이엔드 시장 공략은 그란디오소(Grandioso)로부터 시작된다. 그 이전까지는 절대 넘볼 수 없었던 얼티밋 하이엔드의 경지에 오른 기술력은 자연스럽게 그란디오소라는 커다란 그릇으로 촘촘히 채워나갔다. 2013년에 출시한 그란디오소 최초의 모델은 에소테릭의 최정예 소스기기로서 정상에 오른 P1 SACD/CD 트랜스포트와 D1 36bit DAC였다.

흥미로운 것은 소스기기 뿐만 아니라 앰프 라인업이었다. 사실 기존 에소테릭이 소스기기로서 신제품 출시 때마다 대단히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인 것과 달리 앰프 분야에서의 더딘 성장속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란디오소 플래그십 라인업엔 에소테릭 브랜드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앰프 라인업이 똬리를 틀게 된다. 하나는 C1 프리앰프며 또 하나는 기함급 모노블럭 파워앰프 M1이다. 그리고 지난 2015년엔 스테레오 파워 플래그십 모델 S1을 출시했다.


최근 발표한 그란디오소 C1X 프리앰프

디지털, 클래스 D 등 과거 잠시 실험했던 아키텍처는 더 이상 에소테릭에게는 무의미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으며 그 혁신은 모두 그란디오소에 줄기를 대고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인티앰프를 줄줄이 출시하며 마치 새롭게 편성된 편재에 따라 새로운 상, 하 모델들로 짜임새 있는 라인업을 신속히 갖추어 나가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모델은 F-03A이라는 인티앰프다.

 

분리형 앰프를 한 몸에 담다
에소테릭이 그란디오소로부터 앰프 부문에 심기일전했다는 인상은 쉽지 않게 발견되었다. 그리고 F-03A은 얼티밋 하이엔드 분리형 앰프 그란디오소의 혈통을 거의 그대로 내려 받은 적자다. F-03A는 하나의 섀시에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를 모두 넣은 인티그레이티드 타입 앰프지만 내부는 정확히 프리와 파워 부문을 구별해 설계했다. 통상적으로 중, 저가 인티앰프의 경우 파워앰프에 간단히 볼륨과 입/출력단을 구성해 심플한 프리단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 부분이 인티앰프를 동일한 가격대 분리형 앰프보다 성능을 떨어지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F-03A의 프리앰프 파트는 거의 분리형 프리앰프에 버금가는 설계를 갖췄다. 우선 풀 밸런스 설계로 신호의 순도를 높이는 호화로운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그에 더해 좌/우 채널 대칭의 듀얼 모노 구조로 설계하여 채널 분리도까지 극대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에소테릭 F-03A 인티앰프

프리앰프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볼륨단은 에소테릭의 독보적인 기술인 QVCS 볼륨 제어 방식이 적용되었다. 좌/우 그리고 포지티브, 네거티브 신호가 모두 각각 독립된 서킷에 의해 연동되는 고정밀 볼륨단이다. 이는 상위 S 라인 프리앰프에 적용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래더 저항 전환을 통해 일관된 볼륨 제어가 가능하다. 이 덕분에 얻는 이득은 신호전송 경로 단축을 통한 음질적 왜곡 억제는 물론 위상정보 왜곡이나 크로스토크 왜곡 등이 최소화되는 등 다양한 성능향상을 이끌어낸다.


F-03A 프리앰프 모듈

이 외에도 ‘Ultra-Low-Noise Logic Control’ 개념을 도입, 무척 예민한 음악신호의 전송 경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제어계통 회로를 치밀하게 절연시키는 등 고음질을 위해 구석구석 심도 깊은 설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흔치 않은 톤 컨트롤을 고역, 중역, 저역으로 나누어 마련해놓았다. 하지만 각 밴드에 좌/우 및 +/- 등 네 개 서킷으로 구성된 듀얼 밸런스 설계를 취해 톤 콘트롤로 인한 음질 훼손을 최소화하고 있다. 조작 편의성 및 기능적 장점에 더해 전 분야에 걸쳐 음질 왜곡을 막기 위해 물 샐 틈 없는 노력이 돋보인다.


F-03A 파워앰프 모듈

F-03A의 파워앰프는 8Ω 임피던스 기준 고작 30W의 출력을 갖는다. 이는 매우 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통상 가정에서 사용하는데 그 어떤 문제도 되지 않는 수치다. 그리고 에소테릭은 쓸 데 없이 출력 수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스피커 제동력과 소리의 질적인 면을 위해 출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우선 전원부는 940VA 대용량 트랜스포머 그리고 10,000μF 용량의 캐패시터 4개를 활용해 듀얼 모노 타입 전원부를 구성했다. 넉넉한 전원부 덕분에 F-03A는 앰프 평가 기준에서 출력보다 더 중요한 선형적인 출력, 즉 4Ω에서 정확히 두 배의 60W 출력을 이룩했다.


F-03A 전원부

출력 트랜지스터는 LAPT라는 이름으로 순간 34A, 연속 17A라는 압도적인 전류공급 능력을 갖는다. 이는 그란디오소 플래그십 M1에서도 동일하게 사용하는 출력소자로 F-03A는 LAPT를 채널당 총 6개씩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스피커 출력단에 MOSFET 스위칭을 구현하고 총 8개의 OFC 부스 바를 설치, 코일을 사용하지 않는 등 출력단의 임피던스를 최소화하고 스피커 구동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한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은 모습이다. 채널당 총 3조의 LAPT 트랜지스터를 묶어 3개의 병렬 푸시-풀 드라이브단을 구성하고 그 앞엔 임피던스 감쇄를 위한 LIDSC 회로를 사용한 모습. 최소한의 NFB만 걸고 이 외에는 총 3단 달링턴 회로를 통해 거의 분리형 파워에 버금가는 고순도의 광대역과 막강한 다이내믹레인지를 목표로 설계한 것을 알 수 있다.


F-03A 후면. 슬롯을 제공하여 여러 옵션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는 윌슨 오디오의 사브리나(Sabrina) 스피커에 소스기기는 에소테릭 K-03Xs, 인티앰프 F-03A에 옵션 DAC 보드 OP-DAC1을 장착한 후 진행했다. 참고로 옵션 보드인 OP-DAC1은 아사히전자의 AK4490 레퍼런스급 칩셋을 사용, PCM 384kHz/32bit 외에 DSD 2.8MHz, 5.6MHz, 11.2MHz를 모두 지원하며, 코엑셜, 광, USB 입력단을 갖춘 DAC 보드다. 이를 테스트하기 위해 맥북 에어를 사용했고 옵션보드를 통한 음원 재생에는 에소테릭에서 제공하는 전용 재생 소프트웨어 ‘HR Audio Player’를 사용했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처럼 밝은 음색에 상쾌한 음장이 리스닝 공간을 무척 넓게 채워준다.”

FA-03A는 30W 출력을 갖지만 수백 와트급 앰프에 사용해도 될 법한 대용량 전원부와 정전용량으로 인해 스펙을 알기 전까지 출력에 대해 무신경하게 만든다. 한편 사운드 자체는 무척 정교하고 평탄한 밸런스 위에 정밀화를 그려 넣듯 풍부한 해상력과 깎아지른 듯한 이미징을 표현해준다. 앤 비선의 ‘Left black lake’를 들어보면 보컬 포커싱이 스피커 사이 중앙 안쪽으로 바짝 붙어 부동이다. 보컬의 시선이 청취자와 정확한 높이에 맞춰진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처럼 밝은 음색에 상쾌한 음장이 리스닝 공간을 무척 넓게 채워준다. 특정 대역의 피크나 딥이 느껴지지 않는 견고한 고밀도 표면 텍스처는 에소테릭의 앰프임을 방증한다. 칠흑 같은 배경과 꽉 짜인 균형감은 명쾌하기 이를 데 없다.


“입자의 구조가 보일 정도로 세부 묘사가 냉철하며 치밀하다.
다이내믹스 또한 매우 큰 폭으로 표현되며 볼륨과 상관없이 그 폭이 섬세하게 표현된다.”

윌슨 스피커와 매칭한 F-03A는 정갈하다 못해 고결한 풍미를 풍기는 음색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독일 망거의 오디오파일 모음집 중 오존 퍼커션 그룹의 ‘Jazz variants’를 들어보면 우선 비브라폰 사운드가 마치 얼음 눈꽃 송이처럼 쿨하게 넘실댄다. 입자의 구조가 보일 정도로 세부 묘사가 냉철하며 치밀하다. 다이내믹스 또한 매우 큰 폭으로 표현되며 볼륨과 상관없이 그 폭이 섬세하게 표현된다.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는 사운드는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드는데 미립자 같은 잔향과 미세한 마이크로 다이내믹스는 현장감, 실체감을 북돋운다.


“전광석화처럼 돌진하는 현의 보잉에 심도 깊은 에너지가 꿈틀거리다 빠르게 자취를 감춘다.”

트톤트하임 졸리스텐의 브리튼 ‘Simple Symphony’를 재생하자마자 전광석화처럼 돌진하는 현의 보잉에 심도 깊은 에너지가 꿈틀거리다 빠르게 자취를 감춘다. 에너지의 완급조절이 무척 민첩해 이후 정적이 흐른 후 다시 시작되는 약음들이 심층적으로 비유되며 쾌감을 고조시킨다. 각 악기들의 표면 텍스처는 바늘 하나도 들어갈 틈 없이 견고하다. 그러나 그 진행 자체는 연속적인 악곡 위에 유연하게 풀어내는 편으로 서스테인이 짧고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이 매끈하다. 마치 빙판 위를 질주하듯 빠르고 강력하며 속도 변화폭과 스피드에 비하면 새김이 깊다는 것이 놀랍다.


“땅이 꺼지는 듯한 빠른 어택의 펀치력에 놀라 급히 볼륨을 내렸다.
작은 볼륨에서도 전체적인 균형감이 놀랍도록 평탄하다.”

-10dB 이상의 볼륨으로 올린 후 댈러스 윈드 심포니의 왈튼 ‘Crown Imperial’ 피날레를 재생했다가 땅이 꺼지는 듯한 빠른 어택의 펀치력에 놀라 급히 볼륨을 내렸다. 하지만 작은 볼륨에서도 다이내믹레인지 폭이 감쇄하지 않고 유지되며 전체적인 균형감이 놀랍도록 평탄하다. 금관의 번쩍이는 광채는 섬광처럼 짧지만 조도가 높아 뚜렷하다. 아주 작은 중, 고역의 터치도 선명하게 빛나 그 위치가 정밀하게 잡힌다. 특히 약음의 순간 포착력은 최근 들어본 앰프 중 가장 놀라운 수준이다.


“윤곽이 분명하고 강음과 약음의 대비가 뚜렷해 컨트라스트가 높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폴 데스몬드의 색소폰에서 복잡한 하모닉스 구조를 낱낱이 분해해 스피커로 출력해준다.”

OP-DAC1 옵션 보드든 K-03Xs를 사용한 음반 재생이든 관계없이 F-03A 인티앰프의 특성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예를 들어 데이브 브루벡 ‘Take five’를 재생해보면 윤곽이 분명하고 강음과 약음의 대비가 뚜렷해 컨트라스트가 높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폴 데스몬드의 색소폰에서 복잡한 하모닉스 구조를 낱낱이 분해해 스피커로 출력해준다. 드럼 심벌은 그 어떤 앰프보다도 더 섬세하게 찰랑거리며 단박에 공연 무대로 공간을 이동한 듯 현장감을 상승시킨다.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의 중요성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초스피드, 고해상도, 광대역 등 스펙타클한 하이엔드 앰프 사운드의 전형이다.

 


총평
과거 에소테릭 앰프의 특성이나 선입견이 혹시 있다면 F-03A에서는 잊어도 좋을 듯 하다. 옅게 날리거나 얇게 흩어지는 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에소테릭 앰프의 변화 중 대표적인 특징을 정리하자면 새김은 깊어 졌고 심도가 증가했으며, 음악을 듣는 내내 흥이 날 정도로 역동적인 증폭 특성 등이다. 거의 모든 객관적 지표를 평균 이상 대부분 만족시켜주는 앰프다. 물론 NFB를 약간 사용하고 있음에도 풍부한 배음과 아련한 잔향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음색 위주의 사운드는 아니다. 대신 우주 같은 입체감과 포지티브, 네거티브 신호, 좌/우 신호증폭의 정확도는 최강이다. 물 샐 틈 없이 사무라이 칼처럼 묘사되는 핀 포인트 이미징은 물론, 벼락같은 저역 구동력 등은 에소테릭의 새로운 카리스마를 공고히 하고 있다. 최근 들어본 천 만원 안팎 인티앰프 중 이만큼 내게 강력하게 어필한 모델은 F-03A가 거의 유일하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