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과일 – Billie Holiday –



 


   빌리 할리데이의 유소년기는 암울 그 자체였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녀의 할아버지는 백인 농장주의 노예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13살이 되던 해 빌리를 출산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어린 나이에 출산한 것이 알려지면서 빌리를 버리고 집을 나가게 되었고 그녀는 친척집을 전전긍긍 돌아다니며 잡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그녀가 10살이 되던 해 백인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었지만 인종차별적인 처사로 인해 오히려 빌리가 유치장에 들어 가는 억울한 일도 당했었다. 유치장을 나온 빌리는 뉴욕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생계 유지를 위해 사창가에서 몸을 팔기도 하였으며 유흥 주점에서 잡부 생활을 했었다.


 



   그녀는 잡일을 하던 유흥주점에서 처음으로 배시 스미스와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를 듣게 되었고 그 후 허름한 할렘가의 무명 나이트 클럽에서 처음 데뷰를 한 그녀는 당시 은막의 스타였던 Billie Dove 의 이름을 따 Billie Holiday 라고 불리어졌다.


 


  어느 날 배고픔과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빌리는 한 클럽의 무용수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취직을 위해 무작정 거짓말을 했던 빌리가 춤을 추지 못하는 것이 들통나 버리고 그 곳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졌었다. 무용수뿐 아니라 가수도 필요했던 클럽에선 무용수가 아닌 가수 제의를 받았고 그날 밤 얼떨결에 무대 위에 오르게 되는데 빌리의 노래에 그 곳의 모든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고 한다.


 


  그녀의 노래에 사람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 당시의 돈으로 $56나 되는 거금을 팁으로 받은 것을 보면 쉽게 짐작 할 수가 있겠다. 그 후 John Hanmmond에 의해 발탁 된 빌리는 1933년 베니 굿맨과 함께 첫 레코딩 녹음을 하였고 1933년과 34년 두 해에 걸쳐 200여장의 앨범을 녹음 한 빌리는 단 한푼의 로열티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인 연주자인 아티 쇼와의 공연은 인종 차별이 심했던 당시로서 파격적인 일이었다. 아티 쇼 일행과 함께 호텔에 투숙하려 던 빌리는 거절당하기 일쑤였고 식사를 할 때도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함께 할 수가 없었다. 극심한 인종차별을 몸소 경험해서 일까 그녀는 STRANGE FRUIT 이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STRANGE FRUIT이란 백인 인종차별 자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당한 흑인에 관한 곡으로 나뭇가지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흑인을 비유한 것으로 이 노래가 발표 된 후 모든 방송국에서 방송 금지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이 곡은 99년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노래로 뽑히기도 하였다.


 


   그녀는 제대로 된 음악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그녀만의 독특한 음성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창법으로 세계 최고의 여성 보컬로 여겨지고 있다. 극심한 마약 중독자인 남편에 의해 그녀 또한 마약 중독자가 되었고 수 차례의 수감 생활로 그녀의 몸은 망가져 갔다.



 


  44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빌리를 두고 주의에선 그녀가 비로소 자유를 찾게 되었다고 얘기할 정도로 그녀는 힘든 삶을 살았었다. 자신의 힘든 삶을 노래로 승화시켜 예술적 극치를 보여 주었던 그녀의 우울하고 절제된 목소리는 빌리가 떠난 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있다.




 


 


남쪽에 있는 나무에 이상한 과일이 피었네.


잎사귀에 묻은 피, 뿌리에 묻은 피.


검은 육체가 바람에 흔들린다.


이상한 과일이 나무에 매달려 있네.


 


                                                       


                         Strange Fruit 가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