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D] 바흐의 전통을 계승한 칼 리히터의 브란덴부르크 전곡

바흐의 전통을 계승한 칼 리히터
리히터는 독일 작센주 플라우엔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1세 때 드레스텐 성십자가교회 부속학교에 들어갔으며, 유명한 드레스텐 십자가 합창단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라이프치히 음악학교에서는 성 토마스 교회의 칸틀에서 만난 카를 슈트라우베(Karl Straube), 루돌프 마우엘스베르거(Rudolf Mauersberger), 귄터 라민(Gunter Ramin)에게 사사받았습니다. 1949년 성 토마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된 경력은 독일의 바흐 연주의 전통의 주류를 체득한 음악가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칼 리히터(Karl Richter, 1926~1981)

리히터의 연주활동이 비약하는 계기가 된 것은 1951년 뮌헨 성 마르코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자리를 얻으면서 당시 서독이었던 뮌헨으로 이주한 것입니다. 뉘른베르크 근교의 안스 바흐에서 개최되고 있던 바흐 주간에서 지휘한 하인리히 쉬츠 합창단을 모체로 하여 ‘뮌헨 바흐 합창단’을 조작하고, 또한 1955년에는 바이에른 국립가극장관, 바이에른 방송향, 뮌헨 필 등의 멤버를 픽업해 ‘뮌헨 바흐 관현악단’을 설립하여 바흐의 합창음악의 이상적인 연주를 추구하게 됩니다.

 

독일에서 시작된 바흐 연주해석 확립
1954년 리히터는 독일 그라모폰에 의해 설립된 고악 음악레이블 알히프(ARCHIV)에 쉬츠의 ‘장송음악(Musikalische Exequien)’을 녹음해 레코드로 데뷔합니다. 알히프(글자 그대로 ‘보존기록’, ‘보관소’ 등을 의미함)는 2차 세계대전 후인 1947년 바흐 작품의 전곡 녹음을 목표로 시작 후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빈 고전파까지 그 영역을 넓혀 세계 최초의 고악 음악레이블로 고악 진흥에 힘썼습니다.


리히터가 무엇보다도 행운이었던 것은, 이 신흥 레이블이 카탈로그 확충을 위한 새로운 녹음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시기가 정확하게 LP 레코드 그리고 스테레오 녹음의 보급, 바로크 음악 붐의 융성과 궤를 같이 했던 것입니다. 연주 해석의 사조면에서도 나치의 재앙을 거치면서 2차 세계대전 전의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양식의 확립이 요구되는 시대의 요구가 있었습니다. 리히터는 그 기대에 부응하듯 바흐 작품의 연주 해석 연구와 실천에 몰두하였습니다.

리히터는 19세기 말 이래 자의적인 템포의 흔들림이나 과도한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안정되고 정확한 리듬을 유지하며, 기보대로 음가를 명석하게 재현 및 발음하여 혼탁해지지 않는 깨끗한 성부 균형을 지향하고, 작품 본연의 모습을 추구하며 그 본질을 드러내는 자세를 관철함으로써 20세기 후반 독일에서 시작된 바흐 연주양식을 전 세계에 전하며 그 가치를 공유하였습니다.

 

1960년대 리히터 전성기를 기록한 브란덴부르크
이러한 리히터의 엄격한 자세가 결실을 맺은 것은 1958년 녹음의 ‘마태 수난곡’이였습니다. 예수의 수난을 통해 인간의 약점과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이 대작에 대한 리히터의 해석은 20세기 후반 모든 연주의 규범이 되었습니다. 이후 1960년대 내내 바흐의 성악곡, 관현악곡, 실내악곡, 기악곡(챔발로, 오르간)을 망라하듯 녹음이 이어지면서 바흐 연주가로서 리히터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렸습니다. 그러한 1960년대 리히터의 바흐 해석의 결실 중 하나는 1967년 1월에 거의 2주라는 시간을 갖고 차분히 수록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음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바로크 앙상블에 의한 연주와 비교하면 훨씬 큰 편성의 실내 현악 오케스트라와 기본적으로 현대 악기를 사용하는 솔로가 대치하는 협주곡 혹은 합주 협주곡으로 균형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솔로는 호른의 헤르만 바우만(Hermann Baumann), 피리 오렐 니콜레(Aurele Nicolet), 트럼펫 피에르 티보(Pierre Thibaud, 호칸 하덴베르거, 라인홀트 프리드리히의 스승) 리코더의 한스 마르틴 린데(Hans Martin Linde, 이 녹음의 반세기 후에는 자신의 앙상블에서 브란덴부르크 전곡을 녹음) 등 1960년대 특유의 화려한 연주자가 기용된 것도 이 음반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5번 하프시코드 솔로는 리히터가 연주했으며, 1악장인 칸덴차에서는 압권의 연주를 보여줍니다.

 

최고의 음질로 제작된 하이브리드 SACD
녹음이 진행된 곳은 리히터와 뮌헨 바흐관 녹음의 메인 회장 중 하나가 된 뮌헨대학 강당으로, 가까운 거리감으로 좌우 상하로 가득 펼쳐지는 중간 규모의 오케스트라의 묵직한 저음 위에 쌓아 올려지는 두터운 울림을 메인으로 하여 그 전면에 각 곡의 솔로를 명확하게 클로즈업하고 있습니다. 이 큰 울림 속에서 오케스트라의 각 파트를 매우 명석하게 포착, 리히터 자신과 그의 애제자인 헤트비히 빌그람(Hedwig Bilgram)이 분담하는 콘티누오의 모던 챔버로의 날카로운 울림도 묻히지 않고 픽업되어 있습니다.


리히터의 엄격한 음악의 통어가 실제 소리로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엔지니어는 DG의 아날로그 시대를 대표하는 클라우스 샤이베(Klaus Scheibe), 현장의 프로듀서는 1970년대 이후 아바도의 프로듀서로 활약한 라이너 블록(Liner Block)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 전성기 녹음으로 처음 CD화 된 것은 1989년으로, 이후 2002년에는 CD 시대 최초로 리마스터를 했으며 2004년에는 하이브리드 SACD로 발매되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발매한 하이브리드 SACD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사용할 마스터테이프 선정부터 최종 DSD 마스터링 과정에 이르기까지 타협 없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특히 DSD 마스터링에 있어서 D/A 컨버터와 루비듐 클럭 제너레이터를 통해 튜닝된 에소테릭의 최고급 기기들을 투입했으며, 멕셀(Mexcel) 케이블을 사용하여 마스터가 갖고 있는 정보를 남김 없이 디스크화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