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디오 MOON 780D – 플래그쉽이란 가장 테크니컬하지만 가장 음악적인 것

크로스오버, 무언가 다른 장르의 컨텐츠들을 새로운 하나의 “그 무엇”으로 재창조해내는 작업. 특히 근래의 음악시류의 큰 흐름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고전음악의 시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음표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모두 다 쏟아져 나왔다는 체념하에, 그 다음의 창조작업을 위한 발버둥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화성과 멜로디의 실험이 끝난 상태에서 새롭게 그 무엇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남은 것은 리듬, 즉 비트가 아니겠냐는 분석도 있어왔지만 말이다. 
크로스오버라는 거창한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오디오 분야에 있어서도 무언가 서로 뒤섞거나 변형시키는 시도는 지금까지 꾸준히 있어온 터이다. 통합, 또는 분리라는 개념은 오디오 역사에 있어서 꾸준히 반복해온 것이며 지금이 그 어떤 시기에 해당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오디오 브랜드 입장에서는 사활이 걸린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하이파이 오디오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현대는 크로스오버 이전에 통합(Integration)의 시대에 다름없다고 할 수 있겠다. 고전적인 프리/파워 앰프가 인티앰프로 통합된 것은 새롭다 할 수도 없는 상당히 오래된 컨셉이며 각종 음원 소스기기들간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 정도가 최근 주의 깊게 살펴볼만한 트렌드에 다름없다. 고품질의 올인원 오디오기기들이 최근 쏟아져나오는 것도 현대 오디오 트렌드의 반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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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네트워크 플레이어/뮤직서버라는 두 가지 개념은 점차 하나의 소스기기로 합쳐지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내장 하드디스크에서 음원파일을 재생하는 것과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하거나 외부 NAS 등을 통해 음원을 재생하는 방식의 차이점이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음악을 얼마나 간편하고 충실도 높게 직관적으로 재생하느냐, 즉 인터페이스에 대한 것일 수도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네트워크 플레이어/뮤직서버와 DA컨버터(DAC) 중 어느 것이 음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까? 이 질문 또한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게 돼버렸다. DAC와 네트워크 플레이어는 대부분 하나의 기기에 통합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 디바이스의 성능이 과연 어떤 파트로부터 일관되게 뽑아져 나오는지를 따진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디지털/아날로그, 소스기기/앰프, 중요한 것은 원천기술 유무
전 세계의 오디오 브랜드들은 생각보다 서로간의 기술적 격차가 큰 편이다. 그만큼 각 회사의 규모, 연구인력 수준, R&D 투자비율 등이 다르지만 이러한 것을 최종 엔드유저인 오디오파일이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로 광고를 통해 해당 브랜드의 제품들을 접하는 오디오파일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나마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몇 유저들은 각종 오디오 커뮤니티나 지인들과의 모임을 통해 매우 주관적인 정보를 공유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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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디지털 음원 분야에 있어서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뉘는데, 디지털 음원재생에 관한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가 있는 반면, 그러한 브랜드의 결과물을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단순히 가져다가 쓰는 브랜드가 있다. 후자의 경우 자사의 사운드 튜닝 과정을 거쳐서 완성품을 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샤시와 전원장치만을 간신히 추가하여 비싼 값에 판매하는 케이스를 왕왕 볼 수 있었다.
때문에 앰프 전문 브랜드, 혹은 아날로그 전분 브랜드라 여겨졌던 브랜드에서 디지털 소스기기를 발표할 때에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도 있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예는, 앰프/소스기기, 아날로그/디지털에 관련된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브랜드가 이렇듯 우등생스러운 스펙을 유지하려면 그 규모는 물론 브랜드 히스토리의 신뢰성도 상당해야 할 것이다. 불편하기도 하고 인정하기도 싫지만, 공부도 잘하고 운동과 예체능에도 능한 학생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가족력에 우수한 인재가 많은 경우가 사실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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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쪽 오디오 브랜드 중에서는 심오디오가 바로 그러한 류의 대표주자가 아닐 수 없다. 30년을 훌쩍 넘기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오디오 시장을 뒤흔들 몇몇 스타 플레이어들이 출현했었으며, 부족한 자본 때문에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하지도 않았다. (대다수 유럽 오디오 브랜드들의, 자본에 따르는 브랜드사 역정을 보자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캐나다 퀘벡의 심오디오 본사에서는 심지어 각종 볼트나 너트수준의 부품까지 직접 생산할 정도여서, 심지어 약 30여년 전에 심오디오 앰프를 구입한 사람이 AS를 요청하더라도 본사 공장에서 바로 CNC선반을 돌려 해당 부품을 즉석에서 만들어 고쳐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제품의 생산에 있어서 외주율이 적다는 것은 분명 오디오 분야에서는 유리한 점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디지털 분야에 있어서도 심오디오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최근이 아니다. 현존 최고의 스펙과 퍼포먼스로 알려진 ESS社의 제품들은 설계자의 역량에 따라 결과물이 천차만별인 것으로 유명하다. 심오디오는 Sabre칩을 잘 다루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심지어 최상급 칩인 ES9018이 아닌 아랫 스펙의 칩 가지고도 상당한 완성도의 DAC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제품이 바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Moon Evolution 65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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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D, 모든 면에서 최고. 심지어 친절함에서도…
본 리뷰에 소개하고자 하는 심오디오 Moon Evolution 780D는 하위 기종과는 다르게 CD트랜스포트를 제외한 순수 네트워크 플레이어이자 DAC다. 제품 컨셉에 대해 추정하기로는, 이제 780D수준의 소스기기에서는 더 이상 레드북 CD보다도 월등한 퀄리티의 파일 플레이를 자신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플래그쉽 소스기기인 만큼 제품 가격의 상승을 우려하여 CD트랜스포트를 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본 리뷰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직 780D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은 없다.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옵션으로 내장한 DAC인지, 아니면 DAC를 옵션으로 하는 네트워크 플레이어인지 말이다. 그만큼 각 파트의 성능적 균형/물량투입의 수준이 비슷하고 이상적이라는 뜻이며, 어느 하나의 파트를 옵션으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제품 완성도 측면에서 우수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긴, 하위기종이자 전작이었던 650D나 750D 조차도 정작 제품은 CD플레이어였지만 오히려 내장 DAC성능이 정평이 나서 보다 유명해졌던 사례가 있긴 하다. 
아마도 650D 같은 스타 플레이어가 대 성공을 거둔 이후라면 780D같은 플래그쉽 플레이어를 설계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심적 부담과 압박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애초에 심오디오 측에서 제품의 등급을 미리 정하고 순서대로 제품을 출시했을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650D의 여파가 매우 강력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780D의 기술적 스펙은 한 브랜드의 플래그쉽을 논하기에 부족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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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풀 밸런스드 아날로그 회로를 기반으로 하는 듀얼 모노럴 설계는 기술적으로 문외한인 사람이 보더라도 훌륭한 대칭의 미학을 보여주며 그만큼 사운드의 정교함으로 표현된다. 특히 구형이자 하위 모델인 650D등과 비교하자면 비슷하게 사용하는 부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새롭다.
ESS사의 ES9018s Sabre32 32-bit Hyperstream™ DAC 칩을 각 채널별 1기씩 듀얼 모노로 사용하였으며(디지털 소자들은 완벽한 페어매칭을 전제로, 각 채널별 분리 사용하게 되면 S/N비 등에서 확연한 이점을 보인다.) 마스터 클럭의 정밀도도 펨토 수준에 달한다. (Femto =0.000 000 000 001 = 10-12 10의 마이너스 12승) 펨토 클럭이 많이 보편화 되긴 했지만, 온도 등의 외부 변수에 안정되이 스펙을 유지할 수 있는 설계기술은 그리 흔하지 않다. 
특히 MHP(Moon Hybrid Power)라 불리는 정전압 전원장치의 개선 적용은 전체 디바이스의 최종 S/N비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고 정밀 스위칭 파워 서플라이 방식과 리니어 파워의 “크로스오버”격인 MHP는 고 효율을 기반으로 하는 차세대 전원장치라 불린다. 마치 자동차에 있어서 연비를 좋게 하면서도 마력은 오히려 늘린 경우과 일맥상통한다. 디지털 소스기기에서 전원장치의 퀄리티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지금까지의 모든 하이엔드 디지털 소스기기 브랜드들의 연구결과로 입증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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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출력 인터페이스의 스펙은 말 그대로 현존 최고 수준의 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
DSD256(11.2896MHz)와 PCM 32/384를 기본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전용 앱(App)을 이용하여 기기의 전반적인 컨트롤이 가능하다. Mind라 불리는 심오디오 전용의 앱 프로그램은 타이달(Tidal)서비스는 물론 각종 음원 재생에 필요한 모든 사양과 편리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하이엔드 급 소스기기이지만 비교적 다양한 입력단을 구비하고 있는 점도 매우 친절하게 느껴진다. USB를 통해 PC와 직접 연결할 수 있음은 물론 이더넷(랜선) 및 와이파이를 통한 네트워크 접속을 지원한다. 각종 광/코엑시얼/AES/EBU 디지털 입력은 물론 심지어 블루투스까지도 간편하게 페어링 할 수 있게끔 만든 친절함은 780D가 하이엔드 플래그쉽 플레이어라는 프레임에만 묶여있지 않음을 짐작하게끔 해준다. 
사운드 정체성은?
차려놓은 밥상이 제 아무리 그럴 듯 해도 음식의 맛과 플레이팅이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화려한 스펙과 친절한 인터페이스, 기술적 오리지널리티와 신뢰감 등이 음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780D는 과연 어느 정도의 사운드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인가?
일단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과거 심오디오 앰프류 등에서 느꼈음직한 (적어도 10여년은 훌쩍 지난)날이 선 듯 첨예하고 단단한 느낌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애초에 한 브랜드 제품이라도 앰프와 소스기기의 음색을 도매금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일 뿐 더러, 심오디오의 음색적 튜닝 레퍼런스는 크게 바뀐 지 오래 되었다는 점을 양지해야 할 것이다.
사운드가 정밀하다는 것이 꼭 날카롭고 차가운 음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780D의 경우에도 분명 정교한 사운드 재생이 기반이 되긴 하지만 절대로 날이 선 첨예함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풍부한 정보량을 바탕으로 하는, 보다 실제감에 가까운 자연스러움을 그 미덕으로 손꼽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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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오디오의 네트워크플레이어 전용앱 ‘MiND Controller’ (iOS / Android)
디지털 소스의 사운드의 이상향은 바로 아날로그 그 자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하이엔드 소스기기들이 디지털적으로 그 기술의 한계에 도달할수록 소리가 자연스러워 짐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 수 없다. 780D의 사운드는 그런 시각에서 충분히 바라볼 수 있으며, 이러한 질감에 대한 거론보다는 오히려 스테이징의 형성 능력이나 음악적 표현의 감동에 대해 이야기함이 보다 생산적이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심오디오의 대부분 제품들이 스테이징 형성 능력은 알아주는 편이었다. 특히 650D에 있어서는 무대 형성 능력이, 약 2천만원 대의 단독 DAC 제품과 비견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780D에서도 여전한 스테이징 확장 능력은 650D의 그것에 심도를 더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즉, 보다 입체적이고 디테일한 공간의 표현이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음악적 뉘앙스는 훨씬 자연스러워졌는데, 780D를 오디오 시스템에 연결하여 듣고 있을 때 얼마나 빠른 속도로 청취 음반에 빠져들 수 있느냐를 따져본다면 가히 최상급이 아닐까 한다. 780D에게는 미안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음악 재생과 거의 동시에 제품의 존재감은 사라지곤 했다. 흔히 말하는 스피커가 사라진다는 표현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이것은 분명 한 클래스의 초월을 의미하는 징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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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그쉽이란, 가장 테크니컬하지만 가장 음악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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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수 년 전부터 심오디오에 대해서는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이 바로, “편견을 버리라”는 것이다. 십 수년 전의 그것도 하위 모델 등에서 느껴졌던 심오디오의 음 성향은 분명 날카롭고 분석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직까지도 꼬리표로 붙어있기에 심오디오는 너무나 많이 변했다. 특히 준 하이엔드 수준의 이미지에서 완전한 하이엔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공헌을 한 디지털 소스기기들, 650D를 넘어 780D까지의 역정은 그리 길진 않았지만 많은 울림을 오디오파일들에게 전해준 바 있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접근 가능한 분석은780D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이엔드 오디오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들 몇몇 가지… 우리는 이런 것들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분석하기를 원할 수 있다. 하지만 780D라는 걸출한 소스기기에 있어서, 우리는 적어도 음악성이라는 단어를 한 번 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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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ull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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