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dis(자디스) I88 – 프렌치 진공관의 지독한 향기

때때로 성급한 오디오파일은 완벽을 추구하려 애쓴다.  
가장 완벽한 스피커와 완벽한 앰프 그리고 현시대를 대표하는 최신 하이테크 올인원을 꿈꾸기도 한다. 
 
이런 성급한 오디오파일의 성급하면서 한없이 가벼운 물음에 종종 나는 대답한다.  
세상에 완벽이란 없으며 단지 새롭고 다양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성급한 완벽에 대한 추구는 다른 의미로 한없이 허황된 인간의 욕구에 다름 아니다.  
제아무리 완벽한 오디오라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개성과 매력을 갖춘 재생기기를 탐미하게 될 때 그 완벽함이란 슬프게도 의미 없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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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단언컨대 오디오파일 입장에서 오디오는 다양한 재생음을 즐기는 것이지 전대미문의 완벽함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다양함은 제품 자체의 매력적인 재생음 철학에서 온다.

특히 트랜지스터보다 진공관 앰프에서 매력을 더욱더 다양해진다.

트랜지스터는 단 몇 가지 출력 소자에 의해 음색적 다양함을 누리지만 진공관은 그 출력 진공관 종류 그리고 생산 회사와 연도까지 더해지면 굉장히 다양한 음질을 갖는다.

게다가 각 진공관 앰프 제조사마다 특별한 전통적 음질 기조를 탐험하다 보면 수십 년을 즐겨도 절대 마르지 않는 샘물임을 알 수 있다. 

자디스 
 
자디스는 그 많은 전 세계 진공관 앰프 제조사 중에서도 내게 각별한 기억을 남겼다.  
애초에 EL34를 활용한 오케스트라 앰프는 BBC 계열 하베스나 스펜더 등의 스피커와 매우 인상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화려하고 때로는 섹시한 음색, 약간 가볍지만 산뜻한 저역은 스페셜 에디션까지 이어지면서 독야청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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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대여섯 종의 진공관 인티앰프를 비교했을 때였다.

당시나 지금이나 현역기로 활약 중인 진공관 앰프 중 나는 단 하나의 앰프로 자디스 오케스트라 레퍼런스 SE를 뽑을 수밖에 없었다.

오케스트라는 꽤 오랫동안 자디스의 대표적인 입문 모델로 활약하면서 다양한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았고 레퍼런스 SE는 그중에서도 자디스의 일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일이 손으로 감은 묵직한 트랜스포머와 출력 트랜스 그리고 굉장히 까다로운 검수 과정을 거쳐 선별한 후 장착되는 진공관이 그들의 음질과 내구성을 증명했다.

내부 설계에서 중요한 신호 전송 구간엔 고순도 케이블을 사용해 하드와이어링으로 설계했고 진공관 앰프에서 종종 문제 되기 쉬운 여러 노이즈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대처를 해놓고 있었다.  

중립적인 캐리와 강건하고 심지 곧은 코플랜드 등에 비해서 자디스 고유의 색채감은 다른 단점을 모두 무색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레퍼런스 인티앰프 I88
 
천천히 그러나 무척 진지하게 새로운 모델을 아주 가끔씩 선보이고 있는 모습은 최근 여타 오디오 메이커와 사뭇 다르다.  
1년마다 별다른 혁신 없이 새로운 모델을 발표하고 커다란 마케팅 비용을 들여 매출 신장을 목표로 하는 메이커와 자디스는 차별되어야 옳다.  
사실 자디스 오케스트라 시리즈에 관한 이야기로 이 글의 포문을 열었으나 자디스는 엄연히 현대 하이엔드 진공관 앰프를 대표한다.  
상위급으로 올라가면 5극, 3극관을 가리지 않고 수천만 원대 레퍼런스 모델이 즐비하다.  
한때는 초고가 트랜지스터 앰프로 절대 꿈적도 하지 않던 이글스턴웍스 안드라를 자디스 진공관 앰프가 뭐가 문제냐는 듯 일갈하며 자연스럽게 제동해냈던 일도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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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디스 I88은 그들이 상위 기기에서나 사용했을 법한 기술과 스케일을 인티그레이티드 형태로 설계해 출시한 앰프다.

I88은 기존의 DA50이나 DA88과도 다른 라인업으로 I35 및 I50의 상급으로 개발된 제품이다.

본작을 처음 본 순간 직감했던 것은 인티그레이티드 앰프 최고봉을 꿈꾸며 제작한 제품이라는 것. 그리고 인티앰프로서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에 대응 가능한 성능을 위해 자디스가 선사하는 몬스터급 레퍼런스 모델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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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진공관부터 KT150이라는 최신형 5극관을 사용한 모습이다.

과거 KT88, KT90을 지나 KT120도 모자라 이젠 KT150을 사용했다.

출력, 내구성, 범용성 등 모두 뛰어난 출력관으로 낮은 능률 하에서 고해상도, 광대역, 다이내미즘을 구사하는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의 조류에도 너끈히 대응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실제 자디스 I88은 KT150을 사용, 푸쉬풀 구성을 한 단계 더 진화시켜 더블 푸쉬풀 회로로 구성했다. 결과적으로 채널당 KT150 진공관을 네 알 씩 투입, 총 여덟 개의 KT150을 탑재하고 나섰다.  

이 외에 ECC82(12AU7) 세 알 및 ECC83(12AX7) 두 알을 사용해 라입 레벨 게인 및 위상 전환 그리고 드라이브 등을 책임지게 설계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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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I88은 퓨어 A 클래스로 작동한다. 따라서 제품은 작동 시간 동안 매우 뜨거운 열을 발산한다.

그러나 알고 있듯 이런 작동 방식과 그로 인한 열은 음질과 비례하는 속성이 있다.  

대개 대출력은 높은 제동력을 가지지만 소리의 순도가 떨어지고 소출력은 저역 제어 능력 대신 고순도에 유리하다는 공식이 I88에겐 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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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88의 최종 출력은 진공관 앰프로서는 상당히 높은 90와트에 달하지만 소리의 순도는 대출력 진공관 앰프에 대한 선입견을 철저히 파괴하고 있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감은 트랜스포머는 물론이며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탄탄한 솔리드 스테이트 방식 정류단 그리고 쵸크 트랜스를 사용해 파이형 필터 회로를 적용한 전원부 등 자디스의 전통이 I88에도 그대로 녹아들어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마주칠 때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자디스 앰프의 패널과 트랜스포머 상단 자디스 명판은 소유욕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자칫 촌스럽고 오히려 최근에 와서는 천박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자디스 I88을 보면 그런 느낌은 전혀 없이 도도하고 유려할 따름이다. 
 
마치 오랜 전통의 최고급 와인이나 위스키를 조우한 듯 미소가 번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자디스 I88 테스트를 위해 준비한 시스템은 소스기기로 스포르자토 네트워크 스트리머 그리고 엘락 AS-61 과 케프 Reference 1 등으로 교차 비교해가며 음질적 특색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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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자디스 I88을 들으면서 진공관 앰프가 이 정도로 투명하고 생생한 사운드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개인적으로 캐리나 멘리 등과 함께 가장 선호하는 진공관 메이커 자디스의 신작을 테스트해보는 일은 개인적으로나 리뷰로서나 항상 즐거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음질적 냉정한 평가 외에 감성을 움직이는 힘이 느껴져 테스트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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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프렌치 진공관 앰프 자디스의 음색적 향기는 지독하다.

지난날 연인과의 추억, 눈물로 읽다 덮은 낡은 책 속 책갈피에 담긴 사연이 의식의 저편에서 주르륵 흘러나와 당황하곤 했다.  

문득 자디스의 JP200 프리앰프에 JA200 같은 기함급 파워앰프를 가지고 나의 시스템을 꾸려보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I88은 상급기에 버금가는 현실적 대안으로서 충분히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I88은 최근 몇 년간 개인적으로 들어보고 리뷰했던 진공관 인티앰프 중 단연 최고다.
 
 
출처 : HIFI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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