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el(로텔) A11 & CD11 – 음악을 즐기 수 있는 최소한의 조합

 넘사벽의 초고가 오디오, 전원부에 좌우 채널까지 분리한 오디오, 각종 이상한 액세서리,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자. 처음 CD를 들으며 그 깨끗한 음질과 편의성에 놀라던 때와, 작은 앰프 하나로 클래식 음악의 그 많은 음수에 감탄하던 때로 돌아가자. 네트워크 플레이어와 DAC 없이도 행복하게 음악에 빠져들었던 그때, 24bit나 DSD 음원 없이도 마음을 살찌웠던 그때가 몹시나 그립다.
  
최근 단출하지만 즐겁게 음악을 들은 조합이 있다. 일본 로텔(Rotel)의 CD플레이어 ‘CD11’과 인티앰프 ‘A11’이다. 올해 10월 동시 출시됐는데 두 제품 모두 로텔의 막내 라인답게 가격이 착하다. 물린 스피커 역시 그리 비싸지 않은 B&W의 New ‘603’ 스피커. 이 세 기기만으로 간만에 퀸이나 존 레논 노래를 들으며 음의 샤워를 만끽했다. 리뷰 시 귀를 쫑긋 세워 듣는 ‘왈츠 포 데비’나 ‘크리스마스 송’도 큰 부족함 없이 재생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로텔, 음악을 아는 가성비 오디오 메이커
 로텔은 1961년 대만인 토모키 타치카와가 일본 도쿄에 ‘롤랜드(Roland)’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 그의 아들 밥 타치카와를 거쳐 현재 밥의 조카 피터 카오가 CEO로 있는 패밀리 기업이자 일본 브랜드다. R&D 센터는 영국에, 공장은 중국 주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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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텔은 하이엔드 제품에 버금가는 스펙과 부품, 설계에도 불구하고 착한 가격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플래그십 파워앰프 ‘RB-1590’이 400만 원대 초반, 플래그십 프리앰프 ‘RC-1590’이 200만 원대 초반, 플래그십 인티앰프 ‘RA-1592’가 200만 원대 후반이다. 시청기인 ‘A11’은 소비자가 100만 원, 로텔 인티앰프의 막내 ‘A10’은 70만 원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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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플레이어 역시 마찬가지. 플래그십 ‘RCD1572가 120만 원, ‘CD14’가 90만 원, 시청기인 ‘CD11’이 70만 원이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착한 가격이지만, 몇백만 원, 몇천만 원짜리 CDP를 수없이 보아온 필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비현실적일 정도로 저렴하다. 하이엔드 스펙에 입문형 가격을 갖춘 제품으로 로텔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다. 

가격만 싼 게 아니다. 미국 앱솔루트 사운드의 ‘2014 올해의 제품’(2015년 1월 발표) 리스트에 보면 로텔의 ‘RB-1552 MK2’($999)가 솔리드 스테이트 파워앰프 부문, ‘RCD-1570’($999)이 디스크 플레이어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알맞은 가격대’(affordable)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가격이 싸다고 해서 이 리스트에 아무나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로텔의 이 같은 가성비 비결은 ‘기본에 충실한 제품을 만들자’라는 로텔의 설계 철학에서 비롯된 ‘밸런스 디자인 컨셉트(Balanced Design Concept)’ 덕분이다. 핵심은 1) 좋은 소리는 웰메이드 엔지니어링에서 나오는 것이지 결코 값비싼 부품 투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2) 그렇다고 비용 절감을 위해 값싼 부품만 사용해서는 성능과 음질을 결코 기대할 수 없다고 요약된다. 로텔이 부품 선별과 회로 구성, 자체 품질관리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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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tel A11 Integrated Amplifier 기기 내부 사진
 
이런 자신감 때문인지 로텔은 각 모델에 투입된 부품들을 일일이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자사 공장에서 제작한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포머를 시작으로, 영국산 슬릿포일 전해 커패시터, 일본산 루비콘 커패시터, 영국 웨일즈산 LCR 폴리스틸렌 커패시터, 영국산 메탈필름 저항, 미국산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IC 등등. 가격을 감안하면 로텔 제품에 투입되는 부품의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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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tel CD11 CD Player 기기 내부 사진
 
최단 경로와 좌우대칭으로 회로를 짜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각각 음악 신호의 미세한 뉘앙스 손실 방지와 정교한 이미지 및 사운드스테이지 구축을 위해서다. 로텔의 모든 클래스 AB 앰프가 출력 트랜스포머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트랜스에 들어가는 코일이 음질을 저하시킨다고 봤기 때문. 로텔은 또한 자사 공장에 표면 실장 전용설비를 갖춘 몇 안 되는 제작사이기도 하다. 기판 자체의 품질 관리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로텔 A11, 바이폴라 출력 트랜지스터를 쓴 50W 클래스 AB 인티앰프
 
‘A11’은 바이폴라 출력 트랜지스터를 채널당 2개씩 푸시풀 구동, 8옴에서 50W를 내는 클래스 AB 증폭 인티앰프다.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를 쓴 리니어 파워 서플라이 구성. 윗급인 ‘A14’는 80W, ‘A12’는 60W, 아래급인 ‘A10’은 40W를 낸다. 아날로그 유선 입력만 지원하는 ‘A10’과는 달리 블루투스(aptX, AAC)를 지원하는 점이 큰 매력이다. MM 포노 카트리지 입력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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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패널은 로텔 인티앰프의 특징이기도 한 작은 버튼들이 가지런하게 달려있다. ‘A10’에는 없던 디스플레이도 있다. 왼쪽부터 전원 온·오프 버튼, 3.5mm 헤드폰 출력단, 스피커 AB 선택 버튼, 입력 선택 버튼(포노, 튜너, CD, Aux, 블루투스), 메뉴 선택 버튼, 볼륨 노브 순이다. 표시창을 보면서 메뉴 선택 버튼이나 리모컨으로 좌우 밸런스와 베이스, 트레블을 조절할 수 있다. 역시 ‘일제’답다. 후면은 왼쪽부터 아날로그 입력단(포노, CD, 튜너, Aux 1, 2)과 프리아웃, 스피커 출력 AB 2조, 전원인렛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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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은 가격대를 감안해도 그렇고 절대적 기준으로 봐도 그렇고 어디 크게 흠잡을 데가 없다. THD(전고조파 왜곡률)는 0.03% 이하, SNR(신호대잡음비)은 100dB, 댐핑 팩터는 140을 보인다. ‘A10’과 비교해보면, 입력 임피던스가 47k 옴으로 ‘A10’(24k옴)보다 훨씬 높고, 주파수 응답 특성 역시 10Hz~100kHz(-0.5dB)로 ‘A10’(10Hz~40kHz(-1dB))보다 훨씬 플랫하다. 포노단은 SNR 85dB, 입력 감도 2.3mV, 입력 임피던스 47k 옴을 보인다. 

 
로텔 CD11, TI DAC 칩을 쓴 CD 전용 플레이어
 
사실 로텔은 30년 동안 꾸준히 CD 플레이어를 만들어온 제작사로도 유명하다. 로텔의 첫 CDP인 ‘RCD-855’가 이미 1989년에 나왔다. ‘A11’과 매칭한 ‘CD11’은 CD 전용 디스크 플레이어. 전면 패널 높이가 똑같이 8cm라 패밀리 룩이 근사하다. CD 트레이는 표시창 중간 하단에 마련됐다. 아날로그 출력은 RCA 단자 1조만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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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C 파트의 핵심인 컨버팅 칩은 24bit/192kHz 사양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제품을 쓰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입력단이 없어 외장 DAC로는 쓸 수 없다. 대신 디지털 동축 출력(0.5V, 75옴)이 있어 추후 또는 기존 외장 DAC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놓았다. 이에 비해 상위 ‘RCD-1572’와 ‘CD14’는 울프슨(Wolfson)제 칩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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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은 웬만한 제품에 뒤처지지 않는다. 다이내믹 레인지는 99dB, SNR은 125dB, THD는 0.005%, 주파수 응답 특성은 20Hz~20kHz(-0.5dB), 채널 분리도는 115dB을 보인다. ‘A11’과 마찬가지로 로텔이 자체 제작한 전원 트랜스를 핵심으로 한 리니어 전원부를 내장했다.

 
셋업 및 시청
 
시청에는 국내에서 11월부터 본격 판매가 시작된 B&W의 New ‘603’ 스피커를 동원했다. ‘New 600’ 시리즈의 유일한 플로어 스탠딩 모델로, 무엇보다 2015년 론칭한 ‘800 D3’ 시리즈에서 첫선을 보였던 은빛 컨티늄(Continuum) 콘이 미드레인지 유닛에 투입된 점이 특징이다. 1인치 트위터, 6인치 미드레인지, 6.5인치 페이퍼 콘 우퍼 2발이 장착됐다. 공칭 임피던스 8옴(최저 3옴)에 감도 88.5dB이며, 주파수 응답 특성은 48Hz~28kHz(-3dB)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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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고백하건대, 필자는 ‘603’ 스피커의 됨됨이를 좋아한다. 지난 10월 5일 수입사인 로이코 시청실에서 열린 국내 첫 시연회에서 ‘603’ 스피커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 경쾌하고 밝은 성정, 단단한 저역의 에너지감, 따스한 소릿결이 좋았다. 하지만 그 당시 조합은 린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Akurate DS/3’에 로텔 프리앰프 ‘RC-1572’, 파워앰프 ‘RB-1582 mk2’였다. ‘RB-1582 mk2’는 무려 8옴에서 200W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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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번 ‘CD11’과 ‘A11’은 그때의 그 화려한 조합에 비해 결코 꿀리지 않았다. 물론 음질면에서야 음이 좀 더 예뻤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음악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적극적이며 담대했다. CD로 음악에 푹 빠지고 싶은 애호가들에게 두 조합을 추천한다. CD 재생에 관심이 없다면 ‘A11’도 괜찮은 선택이다. 그 블루투스 성능에 깜짝 놀라실 것이다. 헤드폰 출력과 MM 포노 입력은 보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