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C 의 신예 플래그쉽 스피커, Fenestria의 테크니컬 이슈를 살펴보다.

각각의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에는 각각의 고유한 “인상(Impression)”이 있다. 네거티브한 표현으로는 선입관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모든 오디오 브랜드를 다 들어보고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각종 매체로부터의 간접 경험에 크게 의존하는 바 적지 않다. PMC의 경우에는 그나마 오디오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른바 “실력기”로서의 인상이 강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심심하다는 평을 받는 B브랜드, 음 대역폭이 중음대역에 치우쳐있다는 M 브랜드 등은 실제로 들어보면 의외라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PMC의 인상은 FACT 시리즈나 TWENTY(TWENTY.5)시리즈에 이르러 이전과 크게 달라졌는데, 어떤 경우에서도 부밍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빠르고 깔끔/정확한 저음역, 착색 없이 넓게 펼쳐내는 스테이징의 디테일 등이 많이 언급되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의 일등공신은 PMC 고유의 ATL 미로형 인클로저라고 할 수 있었다. 진짜 오디오를 인터넷만으로 배우는 이들은 PMC 스피커의 내부 미로 구조만 보고서는 이 스피커의 저음 반응속도가 느릴 것이라고 넘겨짚는 경우가 있는데 정작 펙트는 그 정 반대이니 무척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드라이버 이상주의자들은 PMC에 사용되는 유닛들이 그다지 비싸지 않은 제품이라고 폄하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면 마케팅적으로 부각된 다이아몬드나 베릴륨 트위터, 혹은 브랜드적으로 부각된 스캔스픽, 스카닝, 이톤, 다인 등의 유명 유닛을 쓰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정작 PMC 스피커에 사용되었던 유닛이 그다지 싼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좋은(유명한)유닛은 좋은 스피커의 필요조건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한 번이라도 스피커를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한편 기성 유닛이 아닌 직접 제작하여 커스터마이징된 유닛이 가지는 이점은 유명 브랜드라는 감성적 품질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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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독일 뮌헨 오디오쇼에서 첫 선을 보인 PMC의 신예 플래그쉽 Fenestria는 여러모로 볼때 무척이나 참신한 시도가 많이 적용된 스피커이다. 차세대 PMC 플래그 쉽의 형태를 예측하는데 있어서 그 누구도 Fenestria 와 같은 거대 마천루 형태의 디자인을 상상하지 못했다. 과거 대형 박스형 모니터 타입 스피커를 기대했던 이들에게 Fenestria는 상당한 충격이었으리라. 디자인 뿐 아니라 Fenestria에 적용된 테크니컬 이슈는 말 그대로 혁신적이고 실험적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Fenestria의 공진 지배방식

하이파이 오디오용 스피커의 영원한 화두중 하나는 바로 “진동”이다.

스피커 자체가 진동을 유발시키는 장치이다보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제는 필요한 진동(음 재생)과 필요치 않은 진동(공진 등)을 명쾌하게 구별하여 해결할 방법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원 재생음까지 침범할 정도의 과도한 댐핑은 안될 일이고, 가장 정밀하고 빠르게 원치 않는 진동을 구분 및 제거하고자 하는 기술은 스피커의 역사와 거의 같이 존재해왔다. 그리고 여전히 각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현재진행중으로 연구되고 있음이다.

Fenestria는 한 채널당 3피스로 분리되어 있는 구조이다. 2개씩의 우퍼 유닛이 수납된 ATL인클로저가 2개, 미드레인지와 트위터 유닛이 탑재된 주물 알루미늄 합금 하우징의 Nest 모듈. 한 채널당 무려 6개의 드라이버 유닛 구성의 호화로움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우퍼 인클로저 양쪽, 그러니까 한 채널당 총 4피스의 “Planar Wing “, 혹은 TMD 패널이라 불리는 구조물이 메인 인클로저와 약간의 유격을 띄고 자리잡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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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스피커 인클로저의 진동을 잡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인클로저 자체를 아주 무겁게 만들어서 무게로 진동을 억제하는 방식이 있고 이미 발생한 공진을 빠르고 신속하게 드레인 시켜버리는 방식이 있다. 전자는 스피커 무게는 물론 단가 상승의 주요인이 되는 가장 단순무식한 방법이고(심지어 재생음의 자연스러움을 해치기도 한다.) 후자는 진동의 전달 이후의 솔루션에 대해 무책임한 경향이 있다.

Fenestria의 Planar Wing은 제 3의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는데, 인클로저에 발생한 진동과 정확히 반대방향으로(위상으로 치면 역위상)함께 진동하여 공진을 캔슬링하는 원리이다. 밸런스드(XLR)방식의 인터커넥터가 S/N비가 높게 나오는 이유(노이즈 캔슬링)와 비슷한 이론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지금까지 나온 공진제어 이론중에 가장 적극적인 솔루션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ATL 인클로저 설계의 정점

PMC는 고유의 ATL(Advanced Transmission Line)이라는 미로형 인클로저를 고집해왔다. 고전적 스피커에서 사용해왔던 백로드 혼 방식과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전혀 다른 방식에다가 재생음 자체도 카테고리의 다름이라고 할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방식이다. 단순히 복잡하게 미로를 만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해당 스피커가 재생하고자 하는 저음역의 주파수별 에너지를 면밀히 데이터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상단히 고난이도의 기술력을 요구한다. 물론 현 시점에서 PMC가 이 기술을 사용하는 유일한 브랜드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ATL의 가장 두드러지는 매력은, 베이스포트로 뿜어져나오는 초저음역 성분을 가장 정밀하고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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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의 유용성은 PMC 기존 모델들, 즉 TWENTY 시리즈와 FACT 시리즈에서 증명된 바 있다. 경쟁기들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스케일있고 깊은 저음역을 만들어냈으며, 심지어 그 저음이 잘 정제되어 일말의 부밍 비슷한 것도 없었던 성과가 있었다.

ATL이 그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미로의 물리적 길이가 길어야 한다. 우퍼 유닛의 재생 저음역 주파수 파장의 길이와 비례하여 보다 제대로 된 저음을 끌어내기 때문. Fenestria의 키가 이렇게 커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ATL이 효과를 보기 위해 전제하는 중요한 기술이 하나 있는데, 바로 우퍼 유닛을 스피커 설계의 의도대로 정확히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유닛을 자체제작할 수 있는 기술이 없이는(정확히는 우퍼의 Q값을 제어)ATL 에서 큰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PMC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드라이버 유닛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자동차 유체역학으로 완성한 덕트 에어 플로우 기술

최근 TWENTY.5 시리즈에서 선보인 Laminair(라미네어)포트도 Fenestria에 오롯히 적용되었다. (이렇게 보면 중저가 라인업인 TWENTY.5시리즈가 얼마나 알찬 스피커인지 짐작이 간다.) 라미네어 포트 기술은 PMC R&D팀 수장으로 있는 인물인 올리버 토마스(Oliver Thomas)가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이미 공기 유체역학에 있어서 실전 경험(모터스포츠 엔지니어링, 실제 레이싱 팀에서의 엔지니어 경력)이 풍부하다고 한다. 드라이버 유닛이 만들어 내는 공기의 흐름을 자동차 유체역학으로 해석한 것이 무척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실제 계측기 상으로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베이스포트에서의 난류 해결 능력이 괄목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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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 오디오 스피커에서의 중요한 덕목중 하나는 자연스러움이다.

드라이버 유닛이 재생해낸 최초 사운드의 순도를 얼마만큼 보전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특히 초저음 영역에 있어서는 그 에너지만큼 왜곡이 발생할만한 변수가 많다. 베이스포트(저음 덕트)에서 생길 수 있는 일종의 난기류는 초저음의 스피드 저하 및 왜곡으로 문제되었었고, PMC는 독특한 구조의 덕트 디자인을 통해 이를 극복한 케이스이다.

고성능 북셀프와 같은 이미지 포커싱 -Nest 모듈

이 밖에도, Fenestria의 미드레인지/트위터 유닛이 함께 탑재된, 분리형의 Nest 모듈도 특기할만한 이슈가 있다.

​흔히 북셀프 스피커가 톨보이 스피커에 비해 가지는 장점으로 뚜렷한 이미지 포커싱을 손꼽는데, 인클로저에 “파묻힌” 트위터/미드레인지가 베플에서의 회절/반사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중 고음 유닛이 완벽하게 정위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인클로저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이 이상적일 수 있는 것.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Fenestria 개발 단계에서는 Nest라 불리는 알루미늄 주물 프레임에 트위터와 미드레인지를 마운트한 형식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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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와 미드레인지가, 말 그대로 인클로저가 따로 없이 독립적으로 노출된 형태인데 Fenestria가 대형기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정위감과 정교한 핀 포커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Fenestria는 마치 독립된 3대의 스피커를 잘 조합하여 운용하는 듯한 묘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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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디오를 통해 감상하는 음악은 분명 감성의 영역이지만 그 감성을 만들어내는 수단인 하드웨어, 특히 스피커는 검증 가능한 테크놀로지의 총체적 조화이다. 몇몇 브랜드들이 이른바 “감성 기술”로 표현되는 마케팅용 테크놀로지 홍보에 열심일 때, PMC는 심지어 계측기로도 증명 가능한 자사의 여러가지 기술들을 착실하게 개발해왔다. FACT나 TWENTY 시리즈에서도 그러한 “기술의 맛”은 충분히 볼 수 있었고 이제 그 기술들이 규모의 버프를 받아 대형 플래그쉽 모델인 Fenestria에서 정점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물론 PMC보다 하이엔드적이라고 평가받는 스피커 브랜드가 많겠지만(그만큼 어마어마한 가격표를 달고 있고), 적어도 브랜드 네임밸류 뒤에 숨어서 천천히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동 가격대 이상의 경쟁기들은 분명히 긴장해야할 것이다. Fenestria는 타 브랜드에게는 하이엔드 스피커 시장에서 분명 재앙 수준의 위협이 될 만한 스피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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