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W 802 D3가 어쿠스틱 악기처럼 변신했다 B&W 802 D3 Prestige Edition

이번 시청기는 802 D3의 프레스티지 에디션(Prestige Edition)으로 지난해 7월 출시된 모델이다. 유닛과 인클로저 등 설계 디자인과 스펙은 동일하지만, 마감을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의 하이 글로스 산토스 로즈우드(Santos Rosewood)로 바꿨다. 물론 가격도 뛰었다. 802 D3 프레스티지 에디션 소리가 훨씬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만큼, 이번 시청은 더욱 설레면서 긴장이 됐다. 과연 필자는 기존 스탠더드 버전과 프레스티지 버전의 사운드 차이를 간파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면 과연 마감재 교체만으로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스피커 인클로저 마감의 세계
802 D3 스피커 자체에 대한 설계 디자인과 스펙은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이번 프레스티지 에디션에 투입된 산토스 로즈우드라는 목재부터 살펴봤다. 필자의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두 스피커를 구분 짓는 변수는 이것밖에 없다. B&W 홈페이지에서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802 D3 스피커 인클로저(우퍼 수납부)는 20겹의 비치우드(beechwood. 너도밤나무), 내부 보강재는 솔리드 합판과 알루미늄, 스틸 등이다. 그리고 기존 스탠더드 버전의 마감은 로즈넛(Rosenut), 하이글로스 블랙, 새틴 화이트 등 3가지다.
 
산토스 로즈우드는 파우 페로(Pau Ferro), 모라도(Morado), 볼리비안 로즈우드(Bolivian Rosewood)라고 불리는 장미목의 한 종류. 일반 로즈우드에 비해 목질이 더 단단하고 비중이 높기 때문에 악기 재질로 쓸 경우 보다 짧고 분명한 소리를 낸다고 한다. 색깔로 보면 산토스 로즈우드가 일반 로즈우드보다 밝다. 이 밖에 외국 악기 사이트 평을 종합해보면, 단풍나무(maple)보다 울림이 풍성한 소리, 인디안 로즈우드(Indian Rosewood)보다 따뜻한 소리, 에보니(Ebony)보다 밝은 소리라는 평이다. 이를 종합하면 ‘분명하고 밝으며 울림이 풍성하고 따뜻한 소리’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B&W가 일반 로즈우드가 아니라 굳이 산토스 로즈우드를 선택한 이유에는 이 같은 음향 특성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배경이 있다. 지난 2017년 CITES(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교역에 관한 협약)가 불법 가구 제작을 위해 남벌돼온 로즈우드, 특히 브라질리안 로즈우드(Brazilian Rosewood)의 국가 간 교역을 금지시킨 것. 이에 따라 기타 지판(fingerboard)이나 상판(tops) 재질로 가장 많이 사용되던 로즈우드 대신 규제를 받지 않는 산토스 로즈우드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펜더(Fender)의 경우 아예 자신들의 지판을 기존 로즈우드에서 산토스 로즈우드로 교체한다고 공식 발표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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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산토스 로즈우드를 마감재로 선택하면서 802 D3 프레스티지 에디션의 마감 공정은 무려 4주나 걸린다고 한다. 이는 기존 모델들에 비해 40% 더 늘어난 수치. 산토스 로즈우드가 워낙 단단하고 무거운 목재인데다, 13겹의 래커칠을 포함한 하이 글로스 공정이 포함됐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한편 산토스 로즈우드를 마감재로 선택한 프레스티지 에디션은 802 D3와 805 D3에만 적용됐다.
그러면 인클로저 재질 자체가 아니라 그 겉을 두른 마감재 변화만으로 스피커 소리가 크게 달라질까. 이와 관련한 데이터는 없지만, 메탈 인클로저를 쓴 스피커가 아닌 이상 마감재 역시 스피커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소리에 영향을 준다. 실제로 802 D3 스탠더드 마감 중 하나인 로즈넛을 자세히 살펴보면 산토스 로즈우드에 비해 목질 구조가 다소 성긴 모습을 보인다. 펜더 기타의 경우 지판이 로즈우드냐 산토스 로즈우드냐, 아니면 에보니냐에 따라 소리가 크게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본다.
참고로 지금까지 필자가 오디오 리뷰를 하면서 틈틈이 정리해놓은 마감재와 일부 목재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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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산토스 로즈우드, 마카사 에보니, 단풍나무, 마호가니, 월넛
= 마카사 에보니(Macassar Ebony) : 오디지의 플래그십 평판형 헤드폰 LCD-4의 하우징 링 재질. 주 용도는 하이엔드 목공예와 가구, 악기 재료. 아주 비싸고 단단한 나무로 유명하다.
= 제브라(Zebra) : 오디지 LCD-3 링 재질. 얼룩말 무늬라서 그 이름이 붙은 제브라는 주로 캐비닛, 가구, 바닥재로 쓰인다.
= 셰두아(Shedua) : 오디지 LCD-2 링 재질. 용도는 캐비닛과 가구.
= 단풍나무(Maple) : 스펙 인티앰프 WPA-3EX 바닥 인슐레이터 재질. 강도와 밀도가 높아 사용됐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드보어 피델리티의 오랑우탄 O/96 전용 스탠드도 단풍나무를 썼다. O/96 스피커 전면 배플 마감은 월넛이지만 측면 마감이 블랙 단풍나무 베니어인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 마호가니(Mahogani) : 키소 어쿠스틱 스피커 HB-X1, HB-N1 인클로저 재질. 마호가니 자체가 중저역대 울림이 좋은 데다 이를 얇은 단판으로 쓸 경우 그 효과가 더욱 높아진다고 한다. 이 스피커 자체가 다카미네 악기 제작소의 기타 제작 라인에서 만들어진다.
= 월넛(Walnut) : 파인오디오의 플래그십 스피커 F1-10 측면 마감, 포칼의 40주년 스피커 스펙트랄 40 측면 마감. 탄노이 오토그래프 미니 OW 모델의 경우 Oiled Walnut, 즉 기름 먹인 월넛을 마감재로 썼다. 메제의 헤드폰 99 클래식은 아예 월넛으로 타원형 이어컵을 만들었다.
= 호두나무(Bur Walnut) : 파인오디오 F1-10 전면 배플 및 상판 마감.
 
802 D3 스피커 팩트 체크
이제 산토스 로즈우드 마감은 잊고 스피커 본체로서 802 D3에만 집중해보자. 이번 프레스티지 에디션 리뷰를 위해 그동안의 청음 메모와 자료를 다시 취합하다 보니 그동안 필자가 놓쳤던 부분이 꽤 있음을 알게 됐다. B&W의 상위 800 다이아몬드(Diamond) 시리즈는 지금까지 3차례 버전업됐다. 1997년 등장했던 기존 노틸러스(Nautilus) 800 시리즈가 일부 모델에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채택하며 2005년 800 D 시리즈로 변모했고, 이어 2010년에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전 모델에 이식한 800 D2 시리즈, 그리고 지난 2015년에 현행 버전인 800 D3 시리즈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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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B&W에서 1976년부터 채택해온 노란색 케블라(Kevlar) 콘을 버리고 은회색의 새 컨티늄(Continuum) 콘을 채택했다는 것. 또한 우퍼에 2003년부터 써온 기존 로하셀(Rohacell) 대신 새 에어로포일(Aerofoil) 콘을 쓴 점도 달랐다. 인클로저 재질 자체는 20겹의 비치우드이지만 내부 보강재가 MDF에서 솔리드 합판과 알루미늄, 스틸로 바뀐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공개된 내부 사진을 보면 보강재 디자인도 크게 바뀌었다. 
우퍼부 인클로저 형상도 D2와는 180도 다르다. 기존 D2가 전면 배플이 평평하고 측면과 후면이 둥근 원호를 그렸던 데 비해, D3는 후면에 평평한 알루미늄 플레이트를 덧대고 정면과 측면이 둥근 원호를 그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802 D2와 802 D3를 수없이 보아 왔으면서도 의외로 그냥 넘어갔던 부분이다. 네트워크 회로 기판 수납도 D2에서는 바닥 플린스(plinth)에 있다가 D3가 되면서 후면 플레이트 안쪽으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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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 D3의 경우 유닛 구성은 테이퍼드 튜브에 담긴 1인치 다이아몬드 트위터와 둥근 터빈 헤드(Turbin Head)에 담긴 6.5인치 컨티늄 콘 미드우퍼, 본체 인클로저에 수납된 8인치 에어로포일 콘 우퍼 2발로 구성됐다.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인클로저 바닥면에 큼지막하게 나 있는데 이격된 플린스 사이로 저역 후면파가 빠져나오는 구조다. 스피커케이블 연결을 위한 커넥터는 바이와이어링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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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따져보자. 우선 B&W의 상징과도 같은 테이퍼드 튜브(tapered tube)에 담긴 다이아몬드 트위터다. 테이퍼드 튜브는 잘 아시는 대로 1993년 플래그십 노틸러스 모델 때 처음 개발된 것으로, 이를 개발한 엔지니어 로렌스 디키가 지금은 다른 제작사에 있기 때문에 B&W에서 테이퍼드 튜브라는 용어는 안 쓰고 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긴 튜브를 통해 트위터 후면파 에너지를 소멸시키는 원리는 매한가지다.
솔리드 알루미늄 재질의 이 테이퍼드 튜브가 터빈 헤드 위에 노출된 점도 B&W만의 전매특허. 물론 미드레인지 및 우퍼, 그리고 이들을 수납한 인클로저의 진동 에너지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트위터 온 톱(tweeter-on-top) 설계는 1977년 DM7 모델에서 처음 채택했다. 다이아몬드 진동판의 경우 화학 증착 기법(Chemical Vapour Deposition. 증기를 사용해 다이아몬드를 하나하나 퇴적층을 쌓듯이 포개 진동판을 완성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지며, 브레이크 업 주파수가 무려 70kHz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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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inuum™ c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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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rofoil™ cone
B&W가 케블라를 버리고 채택한 컨티늄 콘, 로하셀을 버리고 채택한 에어로포일 콘도 주목할 만하다. 컨티늄 콘은 케블라처럼 복합 샌드위치 콘(금속을 증착한 직조 섬유+폼 코어)이지만 케블라보다 더 가볍고 더 강해 브레이크 업 주파수 등 모든 면의 음향 특성이 훨씬 뛰어나다고 한다. 에어로포일 콘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높은 강성이 요구되는 부분을 가장 두껍게 하는 등 진동판 두께를 달리한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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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인클로저 내부의 경우 강도를 더 높이고 진동을 더 저감하기 위해 기존 MDF에서 솔리드 합판과 알루미늄, 스틸로 교체한 점도 눈길을 끈다. B&W에서 매트릭스(matrix)라고 명명한 이 보강기술(이 역시 로렌스 디키가 개발했다)은 1987년 매트릭스(Matrix) 801 모델에 처음 도입됐다. 골프공 표면처럼 생겨 공기저항을 줄이는 플로우포트(Flowport)는 바닥면에 나 있다.
스펙은 공칭 임피던스 8옴(최저 3옴)에 감도는 90dB, 주파수 응답 특성은 17Hz~28kHz(+,-3dB)를 보인다.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350Hz, 4kHz. 역시 둥근 터빈 헤드에 수납된 컨티늄 콘 미드레인지 유닛의 수비 범위가 넓다. 핸들링 앰프 출력은 50~500W, 높이는 1212mm, 폭은 390mm, 안길이는 583mm, 무게는 개당 94.5kg을 보인다. 플린스 무게만 17kg이 나간다.
 
시청
시청에는 미국 에어(Ayre)의 디지털 허브 QX-5 Twenty, 웨이버사 시스템즈의 인티앰프 W AMP2.5 MKII를 동원해 룬(Roon)으로 타이달 및 룬 코어 저장 음원을 들었다. 802 D3 프레스티지 에디션의 첫인상은 스피커가 어쿠스틱 악기 같다는 것. 그만큼 이 스피커가 전해준 재생음의 질감이 징그러울 만큼 사실적이었다. 지난해 5월 오스트리아 빈 뮤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들었던 그 수많은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무서우리만치 생생한 질감이 연상됐을 정도. 코일과 커패시터, 보이스코일을 통과해 진동판 울림으로 탄생한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런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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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사실 다른 모델도 아닌, 기존 버전과 프레스티지, 혹은 프리미엄 에디션을 서로 AB 테스트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분명 플라시보나 착시 효과가 개입될 것이고, 두 스피커의 에이징 문제도 크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802 D3 프레스티지 에디션은 말 그대로 프레스티지 에디션다운 위엄과 음악성을 한껏 선사했다. 무엇보다 스피커가 일정 레벨 위로 올라가면 악기, 그중에서도 어쿠스틱 악기로 변신함을 새롭게 깨달았다. 물론 지금도 802 D3 기존 모델이 필자의 드림 스피커 중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프레스티지 에디션에서 들은 그 음의 촉감은 계속 필자의 귀에 아른거릴 것 같다. 그것은 마치 빈 뮤지크페라인에서 들었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처럼, 전기 필터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음, 보이스코일이나 진동판 따위는 잊어도 좋은 그런 날 것 그대로의 음이었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출처 : HIFI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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