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한 멋과 풍미, 토렌스(Thorens) TD-124 DD 턴테이블 리뷰

토렌스, 혼(魂)을 소환하다

세상은 첨단 디지털 기술의 진보 일로를 걷고 있지만 그 반대편에선 아날로그 기술의 복원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빛나던 아날로그 기술의 황금기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그 손맛과 소유욕에 여전히 매달려있다. 단순히 편의성을 담보로 발전시켜온 기술의 이기 이면엔 잊힌 아날로그의 욕구가 치솟고 있다. 마치 시소처럼 그 균형을 맞추듯. 음악 관련 피지컬 포맷과 하드웨어 분야에서도 그런 움직임은 꾸준히 관찰된다. 바로 LP의 부흥이다. 이젠 일시적인 붐이라기보단 또 다른 항해를 시작한지도 모르겠다. LP라는 포맷의 부활은 재생 기기의 소구를 일으켜 현재 전세계 턴테이블, 카트리지 메이커들이 부활하고 있다.


현재 그 기술 개발의 소실점은 20세기 중반 아날로그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절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이미 아날로그 기술은 그 당시 정점에 다다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에 와서 여러 걸출한 오디오 엔지니어들이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킨 부분도 있지만 거의 모든 아날로그 기기 설계의 지혜는 반세기 이전에서 나왔다고 봐도 좋다. 특히 턴테이블이라면 기본 뼈대가 모두 그 당시 기계식 턴테이블에서 거의 모두 갖추었다. 이후 일본의 다이렉트 턴테이블 등 다양한 진보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돌고 돌아 다시 토렌스(Thorens), 가라드(Garrard)의 혼령을 달래긴 무리다.


Garrard 301

시계를 돌려 토렌스가 기세 넘치게 간판을 올렸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19세기 후반 스위스에서 설립된 회사로 축음기, 라디오 등을 만들어냈다. 이후 20세기 들어 턴테이블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이었다. 바로 그 당시 만들어낸 턴테이블이 TD-124라는 모델이다. 이후 TD-226은 물론 프란츠 AG와 합평해 출시한 TD-124 MKII 그리고 1970년대의 TD-126 등은 지금도 기억될 뿐만 아니라 빈티지 마니아들로부터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Thorens TD-126 MK III

가라드, EMT와 함께 턴테이블 제작 기술의 정점을 찍으며 현재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마니아들의 애정 속에 숨쉬고 있는 턴테이블들. 1년이 멀다하고 신제품이 출시되고 조금만 지나면 트랜드에 뒤쳐져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곤 하는 디지털의 역사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필자 또한 수십년에 걸쳐 턴테이블을 운용해오면서 토렌스와 추억이 몇 번 즈음은 있다. TD-320을 시작으로 TD-520, 그리고 한 때 마치 방송국용 EMT와 비슷한 디자인의 TD-524를 운용했던 적도 있으니까. 물론 토렌스의 현재를 잊게 한 TD-124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 퍼포먼스를 경험해본 바 있다.

 

Thorens TD-124DD

TD-124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약 10여년간 롱런하면서 당시 수만대를 판매한 베스트셀러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가라드 301과 함께 빈티지 아날로그 마니아들 사이에서 가장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인 모델들. 각각 스위스와 영국을 대표하면서 그 운용 방식, 음질 등에서 호불호가 나뉘지만 지금 사용해봐도 대단히 잘 만든 턴테이블인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현대 하이엔드 턴테이블에서 느낄 수 없는 아이들러 방식만의 매력적인 설계와 디자인, 음질은 재평가 받아야 마땅했다.


Thorens TD-124

특히 TD-124는 가라드와 달리 벨트와 아이들러의 혼합형으로 토렌스 특유의 미학을 완성했다. 구조적으로 육중한 상단 플린스를 사용하고 그 아래에 머쉬룸을 받치고 있으며 암보드 또한 따로 분리가 가능한 구조다. 당시 스위스의 정밀공학의 한 면을 볼 수 있을만큼 매우 복잡하고 비범한 설계가 돋보였다. 모터 문제가 말썽을 일으키곤 했지만 마니아들이 직접 만들거나 장인들이 대체용 모터를 개발해 사용하기도 하는 등 TD-124에 대한 집착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다른 빈티지 턴테이블 애호가가 그렇듯 대형 플린스를 짜기도 하고 암보드를 다양한 소재로 다시 만들어 사용하는 등 여러 방식의 오버홀이 이뤄지기도 한다.


Thorens TD-124 MK II

이후 TD-124는 MKII까지 출시된 후 자취를 감췄다. 필자 또한 그 디자인과 독특한 설계 방식에서 오는 소리에 매료되어 소장하고 싶은 턴테이블 중 하나였던 모델. 아쉽긴 했지만 사실 빈티지 턴테이블을 구입해 수리 등 고생할 생각 때문에 용기를 내지도 못한 것이 사실이다. 주로 오토폰(Ortofon)이나 또는 SME, 피델리티 리서치(Fidelity Research)의 숏암을 장착해야하는데 좋은 상태의 톤암을 구입하는 것도 일이다. 이런 것이 다 게으른 필자의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토렌스가 TD-124의 신형을 내놓는다는 뉴스를 접했다.


Thorens TD-124 DD

그리고 얼마 전 국내에 상륙한 2021 신형 TD-124의 모습을 목도했다. 모델명이 바뀌었다는 것이 일단 그 변화를 상징했다. TD-124 DD라는 이름으로 재탄생시킨 것. 이름에서 알 수 있는 2021년의 TD-124 DD는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을 선택했다. 최근 몇 년간 테크다스(Techdas), VPI 등이 선보이면서 그 성능 면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 토렌스 또한 12극 모터를 사용해 과거 오리지널 TD-124의 아이들러 휠/벨트 방식을 완벽히 대체했다.


TD-124 DD의 모터 드라이브

물론 종종 코깅 문제를 일으키는 일부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의 문제점도 발견되었지만 토렌스는 이를 거의 완벽히 해결했다. 바로 ‘Super Silent Direct Drive’라고 무르는 모터는 다이캐스트 알루미늄 섀시에 직접 단단하게 조립되어 있으며 메인 플래터와 직접 연결된다. 흥미로운 것은 플래터 좌측에 브레이크 시스템이 장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브레이크를 사용하면 외부 플래터를 빠르게 들어올려 멈출 수 있고 다시 풀면 원래 속도로 빠르게 돌아온다. 엘피를 갈아 끼울 때 굉장히 편리한 기능으로 요즘 턴테이블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기특한 기능이다.


TD-124 DD는 무게 3.5kg의 다이캐스트 알루미늄 플래터를 탑재한다.

플래터는 3.5kg 중량의 다이캐스트 알루미늄 플래터로 만들어 자성을 띄는 카트리지와의 상호 작용을 없앴다. 그리고 전원 또한 독립적으로 설계해 여러 면에서 만전을 기한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와우&플러터가 ≤0,04% 수준으로 훌륭하다. 톤암의 경우 전통적으로 9인치 등 짧은 톤암에 최적화된 TD-124답게 이번에도 유효 길이 232.8mm의 TP124를 직접 제작해 장착했다. 알루미늄 톤암 튜브에 황동 무게추를 갖춘 TP124 톤암은 암 높이 및 안티스케이팅 조정이 가능한 톤암으로 기본적으로 오토폰 특주 SPU에 최적화되어 있다.

 

TD-124 DD 인터페이스

TD-124 DD가 출시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사실 의구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레트로 붐에 편승해 마치 패션 소품처럼 제작, 소비되는 제품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TD-124 DD는 몇 분간 만져본 것만으로 토렌스의 진지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거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담담하게 그리고 또렷하게 되살렸고 기능적인 부분들에 있어서도 예외가 없었다. 기계식 턴테이블의 손맛을 살린 좌측의 33 1/3 및 45RPM 조정 스위치를 조작하는 맛은 실로 간만에 아날로그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TD-124 DD의 속도 선택 스위치

우측에는 또 다른 기능을 가진 조정 스위치가 시선을 끌어당겼다. 다름 아니라 톤암 리프트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톤암을 올리거나 내릴 수 있게 해준다. 이 스위치를 작동시키면 수초간 마치 로봇이 팔을 내리듯 징~ 소리를 내며 올라오고 내려온다. 기계식의 손맛을 살려냈지만 사실 전자 회로를 통해 구현한 것으로 기계식처럼 딱딱하지 않고 아주 부드럽게 작동한다. 한편 플래터 앞쪽 중앙엔 속도를 체크할 수 있는 전자식 스트로보스코프가 보이며 하단엔 이를 보면서 속도를 미세 조정할 수 있는 다이얼도 마련해 놓은 모습이다.


TD-124 DD에 장착된 전자식 스트로보스코프

 

청음

이번 청음엔 매킨토시(McIntosh) C53 프리앰프의 MC 포노단을 활용했고 파워앰프는 MC611 모노블럭 파워앰프를 사용했다. 스피커는 탄노이 GRF GR버전을 활용했는데 전대역에 걸쳐 균형감이 매우 훌륭했다. 제니퍼 원스의 ‘Someday, Somebody’를 들어보면 밸런스의 중심이 뚜렷하고 정확한 음정을 구사한다. 속도에 의한 음정의 왜곡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시종일관 매우 정숙한 작동을 보여 마음 놓고 음악에 몰입하게 해주었다. 중역대가 특히 묵직하며 다이렉트 드라이브로 바뀌면서 토렌스가 완전히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돈된 무대와 명료한 음상을 표현해주었다.


“속도에 의한 음정의 왜곡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시종일관 매우 정숙한 작동을 보여 마음 놓고 음악에 몰입하게 해주었다.”

타셋(Tacet)에서 발매한 LP 중 <The Tube Only Night Music>을 들어보면서 현악기에서 질감 표현을 관찰해보았다. 사실 오토폰 SPU의 특징이 소리 속에 짙게 녹아 있지만 여타 턴테이블에서 듣던 것과 토렌스 TD-124 DD에서 듣는 것은 무척 다르다. 현악기들의 텍스처 표현에서 더 많은 음악적 뉘앙스를 매우 세련되게 풀어낸다. 구형 토렌스와 비슷한 것은 사실 디자인뿐이다. 더 넓은 공간에 걸쳐 정교하고 민첩하게 각 현악기들의 표정과 음정을 명료하게 포착해내고 있었다.


“더 넓은 공간에 걸쳐 정교하고 민첩하게 각 현악기들의 표정과 음정을 명료하게 포착해내고 있었다.”

토렌스 TD-124 DD의 플래터 회전 정확성과 정숙도는 이 턴테이블이 소리를 매우 조용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스테레오파일 컴필레이션 중에서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재생해보면 페시지(Passage)의 이동이 매우 민첩하며 노이즈 플로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턴테이블 자체는 피아노 음조의 균형이 매우 중립적이어서 어떤 특별한 착색도 추가하지 않는 스타일이며 오롯이 SPU 카트리지의 성능을 멋지게 뽑아낸다. 특히 약음들의 다이내믹스 대비를 미묘한 폭으로 표현해는 주는 모습이다.


“피아노 음조의 균형이 매우 중립적이어서 어떤 특별한 착색도 추가하지 않는 스타일이며 오롯이 SPU 카트리지의 성능을 멋지게 뽑아낸다.”

특히 이런 다이내믹스 표현은 하드밥 재즈나 또는 교향곡 등에서 그 능력을 폭발했다. 커다란 사운드 임팩트에서도 전혀 찌그러지거나 사운드의 심지가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무대가 흔들림 없이 안정적이며 깊어 현장의 생생한 사운드를 자연스럽게 전달해준다. 오존 퍼커션 그룹의 ‘Jazz Variants’를 들어보면 낮은 레벨의 심벌 사운드도 빈틈없이 포착해내며 역동적인 리듬 섹션 표현도 가히 폭발적이다. 조각처럼 단단하고 그립감이 높은 사운드로서 역동성과 무게 그리고 분명한 악기별 음색 표현을 양립해내고 있는 모습이다.


“낮은 레벨의 심벌 사운드도 빈틈없이 포착해내며 역동적인 리듬 섹션 표현도 가히 폭발적이다.”

 

총평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 오디오 애호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모델은 흔치 않다. 그리고 그런 독보적인 지위는 제품 자체의 대체 불가능한 매력 덕분에 가능하다. 토렌스 TD-124가 바로 그런 제품 중 하나로서 당시 스위스 정밀 공학과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가 만들어낸 진정한 명품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부서지고 병든 TD-124가 세월 앞에 신음하고 있다.


한편 토렌스가 야심차게 그들의 헤리티지에서 길어 올린 TD-124 DD는 새로운 심장과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빈티지 토렌스 TD-124의 소리나 메커니즘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를 고스란히 살려냈지만 그 외에는 모두 달라졌다. 그리고 그 성능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 옛날의 TD-124를 그리워한다면 TD-124 DD는 답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 하이엔드가 추구하는 사운드에 SPU의 풍미를 한 스푼 더하면 TD-124 DD에 근접해진다. 여기에 TD-124가 아니면 안 되는 멋스러운 빈티지 명품의 디자인/인터페이스가 추가되면 TD-124 DD가 된다. 네오 클래식과 현대 하이엔드 설계가 더해진 TD-124 DD는 누군가에겐 대체 불가능한 턴테이블이 될 것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