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D] 폴리니가 그려내는 쇼팽의 순수한 음악미, 쇼팽: 폴로네즈집 전곡

20세기 피아노 연주의 정점에 도달한 1970년대 폴리니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 1942~ )는 1960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 18세.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 1887~1982)의 극찬으로 폴리니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주었습니다. 폴리니는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을 졸업하기 이전인 9세에 데뷔한 젊은 피아니스트는 데뷔 직후 공식 연주활동에서 물러나 레퍼토리 확충과 자신의 예술을 더욱 깊이 있게 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 1942~ )

1968년 연주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하여 1971년에는 유럽 전역에 광범위한 음악회 그리고 독일 그라모폰의 데뷔 앨범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의 3악장&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 7번 ‘전쟁소나타’를 발매하며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쇼팽: 연습곡 집’(1972년), ‘슈만: 환상곡&피아노 소나타 1번’과 ‘슈베르트: 사슬라이인 환상곡&피아노 소나타 16번’(1973년), ‘쇤베르크: 피아노 솔로 작품집’, ‘쇼팽: 24개의 전주곡’(1974년)으로 매년 그간의 연주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만한 강렬한 솔로 앨범을 쏟아냈습니다. 1970년대 폴리니의 절정의 기량이 결실을 맺은 것은 1975년부터 1977년에 걸쳐 녹음한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집(그 중 피아노 소나타 28번과 29번 ‘함마크 라비아’, 30번, 31번, 31번 ‘후기 3대 소나타’인데, 같은 시기에 녹음한 쇼팽의 ‘폴로네즈집’도 쇼팽 콩쿠르 이후 쌓아온 폴리니의 쇼팽 연주의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20세기 피아노 연주의 정점이었습니다.

 

지극히 순수하게 음악적인 쇼팽
당시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의 연주가 궁극의 쇼팽으로 여겨졌고, 생프랑수아의 개성 넘치는 해석에도 애착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던 197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해 1972년 ‘연습곡집’, 1974년 ‘24개의 전주곡’에서 폴리니가 제시한 쇼팽은 그동안 쇼팽 연주의 통념을 선명하게 깨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쇼팽의 연주 해석에 있던 폴란드의 민족주의적 요소(애국주의나 토착의 무곡 양식 등과의 연결)를 끊고, 악보에 쓰인 음표나 지시를 순수하게 음악적으로 포착해 치밀하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연주함으로써, 반대로 순수한 음악으로 우뚝 솟아 있는 쇼팽의 음악적 강인함과 설득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1975년 발매한 ‘폴로네즈집’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모든 음표를 순수하게 음미하여 감정과 사상의 무게로부터 해방되고, 한순간도 이완되지 않는 열띤 긴장감 속에서 정연하게 연주되어 가는 모습은 바로 20세기 후반의 피아노 연주가 살아 숨쉬는 궁극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폴리니는 77세가 된 지금까지도 쇼팽을 연주하며 새 녹음을 발표하고 있는데, 1975년 ‘폴로네이즈집’에서 도달한 경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지크페라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명석한 사운드
녹음은 빈의 무지크페라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청중이 없는 녹음의 경우, 잔향이 많고, 특히 솔로 세션 녹음에는 적합하지 않은 무지크페라인자에서 이루어진 것은 흔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그런 조건에서도 녹음한 밸런스 엔지니어는 독일 그라모폰의 베테랑 클라우스 히만(Klaus Hiemann)으로 피아노 소리를 클로즈업 해 홀 울림에 뭍히지 않게 하여 폴리니의 터치에서 나오는 음 하나하나를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담아냈습니다. 독일 그라모폰의 홀톤을 살린 중립적인 사운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명녹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빈 무지크페라인(Wiener Musikverein)

 

최고의 음질로 제작된 하이브리드 SACD
이 녹음은 역사적인 명반인 만큼 CD 발매 초기부터 디지털 리마스터화 되었으며, 이후 1990년대에는 오리지널 시리즈로 도이치 그라모폰이 사용하는 음질향상 기술 OIBP(Original Image Bit Processing)화 되었으며, 2003년에는 에밀 베를리너 스튜디오(Emile Berliner Studio)의 엔드루 웨드먼에 의해 DSD화 되어 하이브리드 SACD로 발매되었습니다. 이번에 발매한 음반은 16년 만에 두 번째로 이루어지는 하이브리드 SACD로 사용하는 마스터테이프 선정부터 최종 DSD 마스터링 과정에 이르기까지 타협 없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특히 DSD 마스터링에 있어서 D/A 컨버터와 루비듐 클럭 제너레이터를 통해 튜닝된 에소테릭의 최고급 기기들을 투입했으며, 멕셀(Mexcel) 케이블을 사용하여 마스터가 갖고 있는 정보를 남김 없이 디스크화 하였습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1942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마우리치오 폴리니는 열 살 때 첫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특히 1960년 18살의 어린 나이에 국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때 심사위원장이었던 루빈스타인이 폴리니를 가리켜 “기교상으로는 우리들보다 훨씬 낫다”라고 극찬할 만큼 현란한 기교를 과시하면서 그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폴리니는 그로부터 10년간을 연주일선에 나타나지 않고 침묵을 지킴으로써 내적인 성숙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후 1973년부터 레코딩에 들어가 쇼팽을 필두로 녹음을 진행하면서 무르익은 피아니즘의 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폴리니는 쇼팽 위주의 연주에서 벗어나 현대곡까지 레퍼터리로 확보해가면서 폭넓은 비약을 꾀하였습니다. 루빈스타인이 타계한 현재, 폴리니야말로 우리 시대 최고의 쇼팽 연주자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