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D] 카라얀이기에 가능한 궁극의 연주, 비제: 오페라 ‘카르멘’
새로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카라얀
헤드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은 음반 녹음에 대해 평생 열정을 갖고 임했던 선구자이며, 남겨진 녹음도 SP 시대부터 디지털 녹음까지 방대한 양을 자랑합니다. 항상 최첨단 기술 혁신에 민감했던 카라얀은, 녹음 기술이 진행될 때마다 새로운 녹음방식으로 자신의 레퍼토리를 다시 녹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디지털 녹음기술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필립스(Philips)와 소니(Sony)가 개발한 컴팩트 디스크(CD, Compact Disc)는 1981년 4월 잘츠부르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의 프로모션을 자청했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그것은 CD라는 디지털 미디어가 대중화되는데 순풍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오페라의 전곡 음반도 9팀이 제작되었으며, ‘마술 피리’와 ‘투란도트’의 2세트를 제외하고 잘츠부르크 음악제와 부활절 음악제에서 실제 오페라 공연과 병행하여 녹음하였습니다.
헤드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
‘카르멘’ 역시 이 방식으로 수록되어 1984년 3월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제의 새로운 연출로 1982년 9월 음악 부분의 녹음하고, 1983년 3월 대사 부분의 녹음을 완성하여 같은 해 말에 LP와 CD가 거의 동시에 발매되었습니다. 다만 이전 이 시리즈로 복각된 베를린 필의 ‘장미의 기사’ 중 한 곡인 오페라 전곡판과 같은 시기에 베를린 필과의 첫 라이브 녹음인 말러 교향곡 9번, 비엔나 필과의 라이브 녹음인 하이든의 ‘천지 창조’를 제작하였고, 베를린 필과는 세 번째로 베토벤과 브람스의 교향곡 전집 녹음이 시작되는 등 충실한 연주활동을 이어가는 말년 카라얀의 빛나는 명반이 속속 발매되었습니다.
카랴안의 강한 집념을 엿볼 수 있는 ‘카르멘’
카라얀은 전쟁 후 울름(Ulm) 과 아헨(Aachen), 밀라노와 비엔나에서 오페라 극장의 감독을 역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레퍼토리는 비교적 한정적이었지만 녹음은 오케스트라 곡보다 신중하게 접근하였습니다. 카르멘은 장미의 기사, 오텔로 등과 마찬가지로 스테레오로 2번 녹음하고, 영상작품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카라얀의 작품에 대한 강한 집념을 엿볼 수 있는 오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연경력을 쌓아오던 1930년 11월, 울름 오페라 극장에서 3 시즌째 채택하고 있으며, 전후에는 밀라노 스칼라 극장과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상연을 거듭하여 비엔나 연주회 형식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1963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 예술감독 시절 후기에는 존 컬쇼(John Culshaw)의 프로듀싱으로 빈 필과 RCA와 녹음한 최초의 전곡 녹음은 레온타인 프라이스(Leontyne Price)와 프랑코 코렐리(Franco Corelli)를 주연으로 하여 중후하고 농밀한 특색을 갖추고 기로의 레티타티보(Recitativo)를 채용하는 등 그랜드 오페라로서 카르멘의 매력을 최대한 추구한 명반이었습니다. 2년 후 그레이스 범브리(Grace Bumbry), 존 비커스(Jon Vickers), 빈 필과 함께 잘츠부르크에서의 공연과 병행하여 수록한 영상 작품도 이와 같은 경향의 해석이 추진된 베르디와 바그너를 떠올리게 하는 중량급 연주였습니다.
크게 달라진 1980년대 카라얀의 ‘카르멘’
카르멘은 1984년부터 1985년에 걸쳐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제와 여름 음악제에서 공연되었으며, 그 준비 과정이던 1982~1983년 베를린에서 수록된 카라얀의 두 번째 ‘카르멘’은 1960년대의 해석과 방향성을 크게 바꾼 것이었습니다. 카라얀이 오페라를 다시 녹음할 때는 근본적인 해석의 변화가 없다는 전례가 있었지만, 카르멘의 경우는 드라마틱한 중후함에 초점이 맞춰졌던 1960년대의 해석에서 벗어나 카르멘의 고향인 프랑스 오페라 특유의 풍부한 색채감과 세련됨을 지향하는 연주로 어떤 의미에서는 180도 방향이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악보도 20세기 전반에 사용되어온 레티타티보 초연시 대신 알코아 버전을 사용하여 중량감에서 해방된 카라얀이 지휘하는 프랑스 음악의 특징인 투명하고 섬세한 음향을 실현하였습니다. 베를린 필도 그런 카라얀의 의도에 따라 평소 중전차 같은 울림을 억제하고 거장의 모습을 발휘하면서도 탁하지 않은 투명한 사운드로 민첩하고 빠른 속도감 있는 연주를 선보였습니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진을 기용
가수들 역시 이 방향성 위에서 카라얀이 당시 오페라와 성악곡 공연에서 즐겨 협연하였으며, 음악적으로 서로 통했던 미성과 표현력을 겸비한 대표 가수를 기용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카라얀에게 아그네스 발챠(Agnes Baltsa)는 도나 엘비라, 옥타비안, 에보리, 암네리스였고,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는 돈 카를로, 라마메스였으며, 호세 반담(Jose Van Dam)은 암포르타스, 고로, 네델란드인, 피가로였습니다. 주연을 맡은 이들 세 사람은 1980년대 전 세계 주요 극장에서 카르멘을 공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가수였으며 최상의 녹음을 이번 카라얀 음반에 담고 있습니다.
특히, 자유 분방하고 열정적인 카르멘을 다룬 아그네스 발챠와 고리타분한 남자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비애감을 노래했던 호세 카레라스는 각 배역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카엘라 역의 카티아 리치아렐리(Katia Ricciarelli)도 카라얀이 좋아했던 소프라노로 토스카, 투란도트에 기용해 녹음하였으며, 특유의 캐스팅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일부러 파리 국립 오페라 합창단을 프랑스에서 베를린 세션에 초청하고, 여러 역할에 프랑스 인을 적극 기용했으며, 대사 부분은 가수가 아닌 프랑스 배우에게 맡겨 이 오페라가 갖는 프랑스적 특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습니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녹음은 베를린 필 하모닉과 진행하였습니다. 드라이하고 긴장된 오케스트라의 사운드가 좌우로 크게 펼쳐지는 이 홀에서 카라얀의 녹음의 관례로, 사운드에 감싸도록 각 가수의 딕션도 핀 포인트로 명료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1막 위병의 교대 부분에서 트럼펫 연주, 2막에서 에스카미요와 돈 호세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원근감에도 주의를 기울이지만 칼쇼가 수록한 전 반처럼 무대 위 등장인물의 움직임을 일일이 음으로 표현하여 극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보다는 순수하게 음악적인 울림의 매력을 스테레오 음장으로 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최고의 음질로 제작된 하이브리드 SACD
디지털 녹음의 초기 단계로 LP 발매가 CD에 앞서 있던 시기의 녹음으로 본격적인 리마스터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에 발매한 음반은 하이브리드 SACD로 사용하는 마스터테이프 선정부터 최종 DSD 마스터링 과정에 이르기까지 타협 없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특히 DSD 마스터링에 있어서 D/A 컨버터와 루비듐 클럭 제너레이터를 통해 튜닝된 에소테릭의 최고급 기기들을 투입했으며, 멕셀(Mexcel) 케이블을 사용하여 마스터가 갖고 있는 정보를 남김 없이 디스크화 하였습니다.
헤드베르트 폰 카라얀
오스트리아의 지휘자인 카라얀은 매우 일찍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이어 빈 대학에서 프란츠 샬크에게 배웠습니다. 울름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지휘하여 화려하게 데뷔하였고 음악감독으로 시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헤드베르트 폰 카라얀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그의 경력은 새롭게 넓혀져 잘츠부르크 음악제와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데뷔했고, 빈 필하모니 관현악단과 런던 교향악단을 이끌고 연주 및 녹음을 하였습니다. 그는 푸르트뱅글러의 후임으로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을 이끌다가 1955년 종신 지휘자가 되었으며 이와 함께 빈 국립가극장과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예술감독도 겸해 맡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앞서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받아들여 연주의 연장을 위해서 그것을 풍부하게 활용했고, 그러한 예술 속에서 카라얀의 세부에 대한 정확성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음의 관능성과 극적 강렬함이 서서히 갈고 닦여져 각 작품의 이상적이고 뜨거운 윤곽과 잘 합치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