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귀환, 단다고스티노 모멘텀(Dan D’Agostino Momentum) 인티앰프 리뷰

이것은 오디오가 아니다.
반짝이는 알루미늄 섀시 안에선 신선한 녹색 등이 은은하게 내부를 비추고 있다. 금방이라도 무브먼트가 움직이면서 시계 바늘이 재깍재깍 소리를 내고 움직일 것만 같다. 전면으로 불쑥 튀어나온 둥그런 디스플레이 속엔 마치 명품 시계의 브랜드 레터링을 연상시키는 글자가 멋들어지게 인쇄되어 있다. 이것은 오디오인가 아니면 시계인가? 태연하게 파이프가 그려져있지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그림이 생각났다. 추상 미술도 아니며 그저 파이프의 실제 모습과 아주 유사하다. 그러나 이는 이미지의 배반이다. 그저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지 파이프는 아닌 것이다. 댄 다고스티노의 앰프를 볼 때마다 나는 이것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마그리트의 그림을 떠올리곤 한다.
사실 모멘텀의 본질은 시계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디스플레이를 갖춘 인티앰프다. 그 영감이 된 시계는 다름 아닌 브레게. 스위스 출신으로 프랑스로 이주해 프랑스 혁명의 아픔을 겪었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시계를 만들며 최고 수준의 시계를 제작했다. 그의 시계는 철저히 파리 상류 사회 속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는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 시계의 영원한 팬이었다. 남편 루이 16세가 처형된 후 단두대에 오르기 전까지 감옥에서 보내던 와중에도 브레게 시계를 주문했다고 한다. 프랑스 외교부 장관을 역임했던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그리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말할 것도 없었다. 브레게 시계를 닮은 모멘텀 인티앰프를 보면서 브레게를 소유한 듯한 착각에 들게 만드는 힘. 착각이지만 즐겁다.
크렐 그리고 댄 다고스티노
댄 다고스티노의 모멘텀이나 프로그레션 시리즈를 리뷰해오면서 크렐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닐 것이다. 그가 다름 아닌 크렐의 수장이었던 시절이었으니까. 필자 또한 크렐의 마니아였다. 언제부턴가 그 높은 열과 내구성 문제 등으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왕년의 명기라 불리던 제품들은 내 방 문지방을 여러 번 드나들었다. KSA-100S나 KSA-50S 같은 제품들이 생각나며 특히 출력은 낮지만 소릿결이 좋았던 KSA-50S가 기억에 남는다. FPB 시리즈의 그 우람한 체구와 함께 전원 토글을 올리면 윙 ~ 하면서 감전된 듯 짜릿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크렐과 조합을 이룬 스피커는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힘이 넘치며 앰프가 의도하는 대로 추진력 넘치게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경제 호황기 엄청난 기름을 먹으며 거리를 질주하던 머슬카들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지금 생각하면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등 전기차가 대세가 되고 있는 요즘 디젤차를 모는 것일지도.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워서 여전히 전기를 많이 먹고 힘이 넘치게 권위적인 저역을 내주던 크렐이 가끔 그립다.
혁신의 모멘텀
다시 모멘텀으로 돌아오면 이 앰프는 댄 다고스티노가 크렐 이후 필생의 오디오 메이커로 성장시킨 브랜드다.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브랜드 이름으로 내걸은 걸 보면서 그 비장함을 느꼈다. 넬슨 패스나 마크 레빈슨 등 하이엔드 오디오, 그중에서도 앰프 분야에서 레전드인 그여서 이 분야에서 그의 새로운 브랜드에 거는 기대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모멘텀 초창기엔 크렐만한 명성을 따라가지 못했고 뜨거운 열과 야생마 같은 파워로 각인되었던 크렐에 비해 섬세하고 밝은 댄 다고스티노는 방황하는 듯했다. 그러나 모멘텀 400, 프로그레션 등이 출시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지난해 말 YG 어쿠스틱스의 최상위 모델을 프로그레션 모노블럭이 멋지게 제동하는 모습에 반했다.
이번엔 인티앰프다. 최상위 라인업 모멘텀의 비호 아래 출시된 모멘텀은 그 디자인부터 귀족의 자제임을 온몸으로 증명하듯 귀티가 줄줄 흐른다. 전면 패널만 보면 마치 모멘텀 프리앰프의 그것을 보는 듯 거의 유사한 디자인 컨셉을 이어받았다. 섀시의 전체 골격은 알루미늄 빌렛을 하나하나 깎아서 만든 모습으로 그 가공 퀄리티가 눈부실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방열판은 여타 메이커와 달리 구리를 아낌없이 활용해 화려하기 그지없다. 무게는 무려 55KG에 가까워 이를 옮기는 데 혼자서는 허리에 무리가 갈 것으로 보이니 필히 두 명이 움직이는 것이 좋다.
AB 클래스 2백와트
모멘텀 인티앰프는 과거 크렐처럼 A클래스 증폭을 고수하지 않는다. 엄청난 열과 내구성 문제로 고생한 기억이 있었을까. 아무튼 8옴 기준 2백 와트 그리고 4옴 기준 4백 와트 출력을 갖는다. 심지어 스피커의 임피던스가 2옴으로 극단적으로 하강하는 경우에도 선형적으로 대응한다. 꼭 두 배인 8백 와트를 내준다는 것. 그들이 발표한 스펙이 정확하다는 전제하에 요즘 앰프 중 이런 선형성을 유지하는 앰프는 흔치 않다. 그것도 인티앰프에서는. 실제로 B&W 802D3와 매칭에서 크게 기죽지 않고 충분한 전류를 흘려주는 모습을 음질로서 증명하기도 했다.
이런 능력의 기저엔 출력단 설계도 기여하고 있겠지만 별도로 분리된 전원부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판단된다. 프리앰프 한 단으로 보이지만 그 아래에 또 하나의 분리된 전원부가 자리한다. 마치 앰프를 고급스럽게 받치는 스탠드 정도로 오해할 수 있는 모습인데 사실 강력한 전원부가 탑재되어 있다. 당연히 전원 케이블도 하단 전원부에 꼽아야 하면 상단의 본체는 이 전원부에서 DC 케이블을 통해 순수한 DC 전원을 공급받게 된다.
다양한 인터페이스
전면 디자인은 무척 깔끔하고 아주 기본적인 기능만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편의 기능을 탑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총 여섯 개의 XLR 입력단이 마련되어 있고 홈시어터 시스템과 연계를 위한 바이패스 입력도 별도로 마련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리모컨을 활용하여 위상을 바꿀 수도 있으며 좌/우 음량을 조정할 수 있다. 물론 볼륨 조정도 꽤 세밀하게 조정 가능하며 음 소거 기능도 제공한다.
톤 컨트롤 기능을 하는 노브
알루미늄 리모컨
모든 기능은 둥그런 알루미늄 리모컨으로 조절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톤 컨트롤 기능으로 앰프 전면의 우측에 마련되어 있는 노브 두 개가 그 역할을 한다. 이 컨트롤 기능은 음질을 중요시하는 오디오 마니아들에겐 죄악시 될 수도 있지만 모멘텀에서만큼은 편견을 버려도 좋다. 음질의 순도를 해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앰프들에 장착되는 디지털 EQ나 룸 보정 정도로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그 쓰임새가 높으므로 적극 사용해보길 권한다.
성능
DIANA KRALL – A case of you
LIVE IN PARIS
린 클라이맥스 DS/3와 B&W 802D3로 꾸려진 시스템에 도입한 댄 다고스티노 모멘텀 인티앰프는 처음부터 매우 정숙한 배경과 섬세한 해상도로 시스템을 장악했다. 실제 스펙에서 디스토션은 가청 주파수 구간에서 0.1%, SN비는 95dB 정도로 아주 뛰어나다곤 할 수 없으나 청감상 매우 조용한 배경을 선사해 놀라웠다. 다이애나 크롤의 ‘A case of you’ 같은 라이브 레코딩에서도 음과 음, 배경 잡음과 연주가 확연히 대비되며 매우 정결하고 싱싱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런 생동감은 매우 높은 디테일과 해상력에서 기인한다고 보는데 맑게 씻은 듯한 피아노 음색과 알맞은 잔향시간 덕분에 음악 외엔 모두 침묵한 당시 공연장의 앰비언스를 잘 살려낸다.
Kanye West – Runaway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주파수 특성 외에 물리적인 동적 특성에선 상당히 활발하고 힘찬 느낌이 다분하다. 상위 레벨의 앰프들이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너무 정적으로 흘러 음악 듣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모멘텀은 강, 약 조절 및 추진력 등이 뛰어난 편이다. 칸예 웨스트의 ‘Runaway’에서 보여주는 펀치력은 빠른 어택을 시작으로 소리에 중량감을 듬뿍 심어준다. 때론 마치 전방으로 곤두박질치듯 급박한 동력이 느껴지며 강력한 리듬감으로 곡의 특징을 잘 살려낸다. 절대 느린 소린 아니며 약동하는 리듬감 덕분에 재즈, 팝/록 음악에서도 매력적이다.
Olafur Arnalds & Alice Sara Ott – Nocturne in C Sharp Minor
The Chopin Project
겉으로는 정교하고 치밀해 보이는 디자인. 뭔가 시계처럼 냉정한 템포를 맞추어나갈 듯한 모습은 음질에서도 드라난다. 하지만 배음 정보를 해치면서 살짝 겉핥기 수준으로 곡을 진행시키진 않는다. 올라퍼 아르날즈와 앨리스 사라 오트의 쇼팽 ‘녹턴’을 들어보면 연주자는 매우 고요하고 검은 무대 위에서 스트라디바리 하나만 쥔 채 오직 혼자 존재하는 듯 오롯이 반짝인다. 한 음 한 음 힘주어 연주하는 모습이 역력하여 가볍다는 느낌은 없다. 대체로 토널 밸런스 자체가 밝고 화사한 편이며 광대역을 커버하기 때문에 왜소하거나 주눅 든 느낌 없이 상쾌한 재생음을 만들어낸다.
John Williams – The empire strikes back
John Williams in Vienna
이 앰프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마이크로 다이내믹스다. 기함급 인티앰프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실제 들어보면 엘리베이터처럼 계단식으로 치밀하게 오르내리는 강, 약 변화가 음악의 실체감을 북돋우는 핵심이다. 또한 802D3를 완벽히 제압한다고 할 순 없으나 매우 빠르고 깨끗한 재생음을 만들어낸다. 존 윌리엄스가 지휘한 스타워즈 ‘The empire strikes back’을 들어보면 높은 저역 이후부턴 빠르게 롤-오프되면서 양감 측면에선 조금 아쉽다. 그러나 높은 낮은 중역과 높은 저역 사이 구간이 굵직해 포만감이 좋고 높은 볼륨에서도 사운드 스테이징이나 다이내믹스가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다.
총평
모멘텀 인티앰프는 인티앰프의 모습을 띈 거함이다. 대체로 인티앰프의 인터페이스를 유지한 채 성능을 최대화하기 위해 스케일을 키울 경우 커다란 섀시 안에 커다란 전원부를 탑재하는 일차원적 접근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종종 전원부를 분리해서 만드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독일 ASR 인티앰프가 그런 경우며 과거 뮤지컬 피델리티도 이런 시도를 한 전적이 있다. 댄 다고스티노도 모멘텀의 인티 버전을 만들면서 그 성능의 극대화를 위해 전원부 분리를 택했다. 인티앰프의 모습을 띈 괴물은 이렇게 탄생했다.
듣는 내내 YG 어쿠스틱스 최상위 스피커를 당당히 구동하던 프로그레션 파워앰프가 생각나긴 했다. 하지만 대형기를 아주 넓은 공간에서 즐기는 게 아니라 적당한 공간에서 세밀하게 즐기기엔 모멘텀은 막내라고 하더라도 최상위 라인업인 모멘텀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투명도, 정위감, 다이내믹스, 특히 디테일과 세부 묘사 등 으질 측면 그리고 디자인까지 모두 하나에 성공적으로 담아낸 제품이다. 인티앰프의 모습으로 찾아온 증폭의 황제 댄 다고스티노의 귀환. 그가 불고 온 바람이 꽤 매섭다.
Written by 오디오 평론가 코난
출처: Hifi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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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 D’Agostino(단다고스티노) Momentum 인티앰프72,0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