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틸러스로 수렴되는 B&W의 사운드, B&W 606 S2 Anniversary Edition

매년 가을이 되면 도쿄에서 오디오 쇼가 열린다. 당연히 매년 참석했다. 그간 글로만 접했던 평론가들을 직접 볼 수도 있고, 다양한 신제품도 만날 수도 있다. 이벤트가 열리는 도쿄 인터내셔널 포럼의 청취 환경이 워낙 좋아서, 익히 아는 모델이라도 집중해서 새롭게 들어보기도 한다. 내게는 여러모로 공부가 되는 행사다.

몇 년 전에 후 노부유키 씨를 알게 되어, 가끔 지나칠 때 인사 정도는 나눈다. 세미나 스케줄을 체크해서 시간이 맞으면 직접 자리에 앉아 듣기도 한다. 잘 알다시피 그는 오리지널 노틸러스를 20년 가까이 애용하고 있다. 그간 인클로저가 없는, 순수하게 드라이버에서만 나오는 음을 찾아 여러 스피커를 편력한 끝에 도달한 제품이다. 현재까지도 그 이상의 대안이 없는 모양이다.

나 역시 자주 노틸러스를 들었다. 들을 때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녀석이다. 또 워낙 민감해서 케이블이나 액세서리를 바꿔도 즉각 즉각 소리에 반영이 된다. 그러나 무려 4대의 스테레오 파워를 요구하는 괴물이라 엄두도 못 낸다. 하지만 그 투명하면서, 빠르고, 다이내믹하고, 아름다운 음은 항상 매혹적이다.

최근에 700 시리즈 및 600 시리즈의 음을 듣고 있으면 한 걸음 한 걸음 노틸러스를 향해 접근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어떤 뚜렷한 목표나 이상이 있는 가운데, 현실적인 여러 요인을 감안해서 차분하게 업그레이드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만난 606 S2 애니버서리 에디션은 그런 면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가격대를 보면 그 누구에게 추천해도 칭찬받을 것 같다.

 

600 시리즈의 매력
현행 바워스 앤 윌킨스(이하 B&W)의 제품군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저 상징적인 오리지널 노틸러스는 지금도 주문 생산으로 만들어지고 있고, 그 밑으로 각각 800, 700 그리고 600 시리즈가 포진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600 시리즈는 일종의 입문기에 해당한다. 노틸러스와 800 시리즈의 높은 성과와 가격대를 생각해볼 때, 상대적으로 무척 저렴한 600 시리즈를 아직도 발매하는 부분은 좀 의아스러울 것이다. 아마 이렇게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생산하는 메이커는 B&W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상급기의 기술력을 차례차례 이양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그 혜택을 듬뿍 얻는 것이 600 시리즈다. 그러므로 단순히 가격표나 하이어라키에 얽매여 600 시리즈의 진정한 가치를 놓치는 것은 참 불행하다고 본다.

흔히 가성비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때문에 진부한 느낌도 있지만, 실제로 600 시리즈는 타사에서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가격 대비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애니버서리 버전으로 진화한 몇 개의 모델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만하다.


600 Series Anniversary Edition

현행 600 시리즈 중, 오로지 4개의 모델이 그 혜택을 입고 있다. 플로어 스탠딩 타입의 603과 북셀프 606, 607 그리고 센터 스피커 HTM6가 그 주인공이다. 모두 기존 형번 뒤에 S2가 붙는다. 700 시리즈 중 일부가 시그너처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된 것과 같은 맥락이라 보면 좋겠다.

그중 606은 사이즈나 퍼포먼스라는 측면에서 참 알찬 제품이라 하겠다. 가격도 착할뿐더러, 전용 스탠드에 장착한 사운드 퀄리티는 특필할 만하다. 실제로 오리지널 버전이 2018년 말에 나와, 2019년 <왓 하이파이>에서 선정한 올해의 제품에 들어간 점이나, 그 후속기이며 이번에 만난 606 S2 애니버서리 버전이 2020년 동 잡지의 톱 스피커 부문에 뽑힌 점을 생각하면, 상당한 기대를 해도 좋을 듯하다.

사실 이 가격대엔 난다 긴다 하는 북셀프 모델들이 잔뜩 포진해있고, 엄청난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서 이런 상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이 대역에 어떤 제품들이 등장하는지 충분히 짐작하는 터라, 상대적으로 본 기의 높은 성능에 대해선 충분히 특필할 만하다고 본다.

 

왜 애니버서리 에디션인가?

좀 뜬금없는 상황이기는 하다. 606이 나온 시기가 2018년 말. 그리고 이듬해 2019년을 석권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애니버서리 에디션으로 진화하면서, S2라는 형번을 뒤에 달고 나왔다. 너무 급한 변신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더구나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메이커가 주춤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의문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20년 자체가 시사하는 부분이 있다. 즉, 600 시리즈가 런칭된 지 꼭 25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념비적인 시기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기본 골격은 유지하되 몇 가지 마이너 체인지를 통해 보다 정밀하고, 효과적인 업그레이드를 행한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빠르게 606의 후속기를 만난다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우선 피니쉬를 보자. 원래는 블랙과 화이트 버전만 제공되었다. 여기에 두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오크와 레드 체리다. 오크는 사이드에 오크 무늬를 입힌 반면 프런트 패널은 화이트다. 레드 체리는 블랙의 프런트 패널에 레드 체리 우드 무늬의 사이드. 인클로저 전체를 블랙이나 화이트로 마감한 것과 비교하면 보다 세련되면서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나라면 오크나 레드 체리 쪽을 선택할 것 같다.


전체적인 스펙은 전작과 동일하다. 감도라던가 담당 주파수 대역, 파워 핸들링, 크기, 드라이버 등에서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런 오크와 레드 체리 피니쉬의 제안 외에도 크로스오버를 개량해서 700 시그너처 시리즈에 들어가는 부품을 투입한 점이 매우 극적인 업그레이드 효과를 가져왔으며, 트위터 주변에 알루미늄 링을 부착해서 애니버서리 느낌이 나도록 디자인한 점도 시각적으로 어필이 된다.

사실 전작과 1 대 1의 비교를 해보지 않아, 뚜렷하게 뭐가 개선되었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래서 외지의 평을 여럿 점검해보니, 우선 언급되는 것이 저역이다. 즉, 보다 정밀하고, 컨트롤된 저역이 나온다는 점이다. 당연히 펀치력도 좋아졌다. 실제로 인클로저 후면에 장착된 덕트를 세밀하게 조정해서, 저역이 과도할 경우 어느 정도의 차단 조치가 이뤄진다고 한다. 이런 설계의 덕을 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개인적으로 상급기에 못지않은 맑고 투명한 고역에 주목하고 있다. 정말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일체 군더더기가 없고, 애매한 구석이 없으면서, 개방감도 좋다. 그렇다고 귀를 자극하거나 쏘는 느낌도 없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질감이 나온다. 이런 음질은 이 가격대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레벨이다. 감히 오리지널 노틸러스를 연상시킨다고 해도 좋다. 정말 듣는 내내 탄복하고 말았다.

 

간단한 스펙 둘러보기

그럼 본격적으로 본 기의 스펙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기본적으로 2웨이 북셀프 타입이다. 상단에는 25mm 구경의 강화 알루미늄 돔이 쓰였다. 고역 특성이 상당해서 실제로 38KHz까지 무난하게 뻗는다. 수퍼 트위터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것이다. 드라이버를 직접 생산하는 B&W 인지라, 가격적인 부담을 피하면서 실질적인 퍼포먼스를 한껏 높인 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라지 않다.


한편 주요 음성 신호를 포괄하는 미드 베이스는 165mm 구경으로, 콘티늄 콘 타입이다. 이 역시 기존의 소재를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 800 및 700 시리즈에도 쓰이고 있다. B&W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바로 그 드라이버가 동원되었다.

사이즈는 그리 크지 않지만, 깊이가 30Cm에 달하고 여기에 그릴을 붙이면 더 늘어난다. 이 말은 어느 정도 뒷벽과 옆벽에 띄워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리어 파이어링 방식의 덕트를 채용했으므로, 뒤쪽으로도 충분히 저역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최소 50Cm 정도는 띄어놓기를 권장한다. 그런 면에서 꽤 세팅에 신경 써야 할 제품이라 하겠다. 제대로 설치하면 상당히 정확하고, 펀치력이 좋은 저역을 실감할 수 있다.


한편 전용 스탠드도 제공되고 있는바, 그 모델명은 STAV 24다. 다행히 가격적으로 그리 부담은 없다. 이보다 더 튼실하고, 강력한 스탠드를 도입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제짝으로 매칭하는 것이 여러모로 무난하다고 본다. 단, 어떤 형태든 전용 스탠드는 필수라 하겠다. 그냥 설렁설렁 세팅해서 듣는 모델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주파수 담당 대역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어서 제안되고 있다. 하나는 주파수 대역으로 40Hz~33KHz. 또 하나는 주파수 응답으로 52Hz~25KHz. 어떻게 재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을 이렇게 두 개의 자료로 요약한 모양새다. 대략 저역은 50Hz 이하까지, 고역은 25KHz 이상까지 재생한다고 판단하면 될 것 같다.


이렇게 쓰는 이유는 내 개인적인 감각에 따른 것으로, 재즈의 더블 베이스나 오케스트라의 저역부가 어떻게 재생되느냐, 이 부분을 점검한 데에 따른 것이다. 기본적으로 50Hz 이하면 이런 부분은 무난하게 커버가 된다고 본다.

감도는 88dB. 8오옴짜리 제품으로 최소 3.7 오옴 이하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매칭 앰프는 그리 까다롭지 않다. 메이커에선 30~120W 정도면 된다고 본다. 통상의 인티 앰프면 충분하다. 실제로 이번에 매칭한 웨이버사의 슬림 라이트와 좋은 상성을 보였다. 어떤 앰프를 걸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 판단이 된다.

 

본격적인 시청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앰프 및 소스는 웨이버사의 슬림 라이트를 사용했다. 단, WAPS라는 전원부를 보강한 모델로, 이 대목에서 확실히 음질의 개선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앰프는 단지 출력만 갖고 판단할 수 없으며, 같은 출력이라도 전원부가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고품질의 음이 재생이 된다. 구동력이나 대역폭, 뉘앙스, 질감 등 여러 면에서 개량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 시청은 그 효과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베토벤〈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1악장〉클라우디오 아라우 (피아노)
– 크림슨 앙상블 〈Morning from Peer Gynt〉
– 레이 브라운 〈Fly Me to the Moon〉
– 제인 모나이트〈Over the Rainbow〉

 

Claudio Arrau
Piano Concerto No. 5 in E flat major (“Emperor”), Op. 73

첫 트랙은 스케일이 크고, 다양한 악기가 등장하며, 다이내믹스도 큰 피아노 협주곡이다. 그 점에서 본 기가 내는 퍼포먼스는 매우 인상적이다. 일단 결이 곱고, 디테일이 풍부하다. 전면에 등장하는 피아노의 터치는 영롱하면서 아름답다. 배후의 오케스트라는 치고 빠지는 스피드가 일품이고, 필요할 땐 아낌없는 펀치력을 선사한다. 빠르게 패시지하는 부분에서 일체 엉킴이나 딜레이가 없으며, 정확한 시간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 작은 2웨이 북셀프에서 이렇게 고급스러운 질감이 재현되는 것은 특필할 만한 부분이다.

 

Crimson Ensemble – Morning from Peer Gynt
Enchantment 40 Peaceful Classics

이어서 크림슨 앙상블. 꽤 넓은 공간 여기저기를 점하고 있는 여러 악기들의 선명한 모습. 그 각각의 음색과 존재감이 각별하다. 그윽하게 긋는 첼로라던가, 목관의 풍요로운 질감 등이 아기자기하게 재현되고, 원곡이 갖고 있는 슬픔이나 회한 같은 분위기가 정밀하게 묘사된다. 무엇보다 투명도가 압권. 작곡가가 묘사하고 있는 북구의 신비스럽고, 청아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Ray Brown – Fly Me to the Moon
Ray Brown, Monty Alexander & Russell Malone

레이 브라운, 러셀 말론, 몬티 알렉산더 세 명이 함께 한 세 번째 트랙은, 드럼이 없는 트리오 편성이다. 그러나 절대로 모자람이 없다. 적절한 양감을 갖고 약동하는 더블 베이스의 깊은 맛이 잘 살아있고, 기타가 스트로킹하는 대목이나 흔히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간다고 표현하는 피아노의 탱글탱글한 감촉이 여축없이 재현되고 있다. 느긋하면서 깊이가 있는 연주가 정말 멋지게 표현되고 있다. 가장 우려했던 저역에서 꽤 만족스러운 재생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음이라면 하루 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Jane Monheit – Over the Rainbow
Taking a Chance on Love

마지막으로 제인 모나이트. 초반에 무반주로 노래하는 대목에서 마치 요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디테일 표현이 뛰어나, 숨을 내쉬거나, 침을 삼키거나, 혀가 입천장에 닿는 모습 등이 정치하게 그려진다. 공간의 울림이나 크기도 아울러 짐작할 수 있다. 이어서 피아노가 나오고, 다양한 악기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는데, 그런 극적인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묘사된다. 보컬의 매력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흡인력이 대단하다. 전통적으로 중역이 튼실한 B&W의 전통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결론
애니버서리 에디션으로 갑자기 등장한 606 S2. 감히 말하건대 사면 이득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자랑한다. 어지간한 중고를 찾느니 이런 신품에 과감히 투자하라고 권하고 싶다. B&W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 스피커는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B&W가 주는 방역대책용 선물이라 해도 좋다.

Written by 이종학(Johnny Lee)

출처: Hifi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