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ac BS312 Jubilee – 모니터 북셀프의 정상 탈환

작은 강자

유럽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첨단 기술의 본고장이다. 한 건물 건너 한 회사가 모두 특허를 갖고 있는 회사라고 농담 삼아 할 만큼 일반 대중은 모르는 신기술의 각축장이다. 대기업이 승자독식 구조를 취하고 있는 국내 상황과는 매우 다른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기술의 저변엔 험난한 역사와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커다란 전쟁의 기억이 있다.

그중 독일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공학을 발전시켜온 나라다. 자동차부터 온갖 전자 공학의 선두에 서있다. 오디오 산업에서도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독일은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기술적인 면에서 우위를 점해왔다. 이 중에서 엘락 같은 메이커는 대표적이다. 우리에게 독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스피커 메이커 중 하나가 엘락과 MBL 정도니까.

1926년 ‘일렉트로어쿠스틱’이라는 이름을 출범한 이후 2차 세계 대전 이후 엘락은 꽤 커다란 전자회사로 발돋움했다. 설립 초기엔 전쟁 당시 사용했던 수중 음파 탐지 기술을 연구하는 회사였고 이를 기반으로 엘락은 턴테이블이나 카트리지를 생산하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최근 들어 엘락이 미라코드 시리즈를 재출시하고 있는데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당시 무척 앞서간 정밀공학의 기수 엘락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작은 강자들 사이에서 엘락은 이제 거의 1세기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하이파이 메이커로 성장했다. 작은 강자들, 그중에서도 진정한 강자가 엘락이다.


BS312 Jubilee

엘락의 엔지니어 앤드류 존스(Andrew Jones)

최근 몇 년간 엘락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이미 오래전 생산했었던 미라코드 시리즈의 턴테이블을 다시 부활시켜 여러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한편 독일 본사 외에 미국에 엘락 아메리카를 설립, 매우 빠른 속도로 새로운 라인업을 구축했다. 케프에서 일했었고 하이엔드 스피커 메이커 TAD의 수장으로 활약했던 앤드류 존스의 영입으로 강력한 추진력을 얻었다. 화려한 커리어만큼 그는 평생 바쳐온 스피커 제작 기술과 노하우를 엘락에 듬뿍 담아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엘락의 본진은 여전히 독일이며 그들이 이어온 역사를 배제하고 엘락을 설명할 순 없다. 특히 엘락의 제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소형 스피커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중 대표적인 모델은 모두 숫자 3으로 시작한다. 지금은 대중적인 캐비닛 소재로 부상한 금속 인클로저를 엘락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해왔고 그만큼 그들의 소리는 미래 지향적이었다. 모두 MDF 등 목재의 통 울림을 활용하던 시절 엘락은 작은 금속 인클로저에 JET라는 독특한 방식의 트위터를 탑재했다. 매우 빠른 반응 속도와 일체의 잡음이나 위상 오류가 없는 말끔한 소리. 그리고 그 중심에 BS300 시리즈가 있었다.

최근 다시 이 스피커를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미 BS312까지 진화한 이 시리즈는 몇 년간 새로운 버전이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락 스피커의 엔지니어링 총책임자인 롤프 얀케(Rolf Janke)는 아마도 더 이상 개선할 지점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롤프 얀케는 엘락에 좀 더 미세한 튜닝을 가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드디어 등장했다. 바로 BS312 Jubilee 에디션이다.

이 모델은 다름 아닌 1995년 출시한 CL305라는 BS312의 시조새 격 북셀프 출시 25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적 제품에 다름 아니다. 우선 BS312 Jubilee를 처음 보면 아주 앙증맞은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 작은방 또는 데스크탑 환경에 어울릴만한 크기다. 하지만 실제 들어보면 BS312 Jubilee는 20평대 거실도 채울 만큼 넓은 공간에 사운드 스테이지를 펼쳐낸다.

 

이런 부분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은 역시 음장의 크기, 정위감 등에 핵심적인 영향을 주는 트위터다. 5세대 JET로 진화한 이 최신 트위터는 오스카 헤일 박사가 곤충의 고속 날갯짓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AMT 트위터 설계에 기반을 두어 엘락이 개발한 것이다. 그리폰, 문도르프나 레거시, 버메스터, 오디오벡터 같은 메이커들도 AMT 트위터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각각 조금씩 다른 구조를 가지며 엘락도 마찬가지다.

 

그다음으로 미드/베이스 우퍼는 AS-XR LLD 콘을 사용한 115mm 짜리 유닛을 사용하고 있다. 기존 BS312와 달리 진동판 크리스탈 문양의 실버 색상으로 바뀌었는데 개인적으로 훨씬 더 멋있다. 다름 아닌 크리스탈 모양의 역돔 형태 알루미늄 돔을 페이퍼 콘과 결합시켜 만든 일종의 샌드위치 타입 진동판이다. 높은 강도와 진동 감쇄 그리고 착색을 최소화하면서 적은 면적에서 다이내믹스 및 파워 핸들링을 최대화하기 위한 설계 방식이다.

BS312 Jubilee는 엘락의 유닛 제작 기술의 최신 사양을 담고 있으며 이 두 개의 유닛을 사용해 2웨이 2스피커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고성능 소형 스피커다. 주파수 대역은 42Hz부터 50kHz, 간단히 말해 초저역을 제외한 중간 저역에서 초고역을 훌쩍 뛰어넘는 50kHz까지 재생하는 스피커다. 크기만 보고 협대역을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3.2kHz로 잡고 있으며 이 부분에서 BS312 Jubilee는 기존 BS312와 다른 점들이 보인다. 일단 유닛과 크로스오버 PCB를 연결하는 케이블을 오디오퀘스트로 바꾸었고 커패시터도 다른 것을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BS312 Jubilee의 캐비닛은 정확히 유닛에 따라 정확히 두 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유닛의 후방 에너지가 서로 섞이면서 각 대역의 재생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다. 한편 저음 반사형 타입으로 설계했는데 그 포트는 후방 상단으로 열어 포트의 길이를 확보하고 있으며 포트의 구경도 상당히 큰 편이다. 이 외에도 BS312 Jubilee는 기존 B312에 채용되었던 바인딩포스트를 더 상위의 카본 바인딩포스트롤 변경했으며 후면 명판에 설계자 롤프 얀케의 사인을 넣어놓은 모습이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Kelly Sweet – Je T’aime

 We Are One

공칭 임피던스 4옴에 87dB 능률을 가진 BS312 Jubilee는 꽤 앰프를 가린다. 일단 일렉트로콤파니에 ECI6D 인티앰프를 매칭해 이번 테스트에선 충분한 저역 컨트롤과 탄력적인 리듬감을 확보했지만 작다고 무시하면 큰 코를 다칠 수도 있다. 아무튼 이번 테스트에서는 ECI6D 인티앰프에 웨이버사 Wdac3c를 활용해 진행했다.

여러 보컬 레코딩과 피아노 소품 등을 위주로 듣다가 최근 자주 들었던 켈리 스윗의 ‘Je T’iame’에서 이 스피커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작은 스피커는 마치 정전형에 필적하는 핀포인트 포커싱을 보여준다. 마치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벼린 음촉에 끝없이 치고 올라가는 고역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대부분 JET5의 능력으로 추측되는데 당연하다는 듯 눈을 감으면 스피커는 사라지면 음악만 남는다. 보컬은 무대 중앙에 화살처럼 박혀 정확한 음상을 그린다. 음상의 높이는 약간 높은 편이며 저역은 사이즈를 감안하면 깊지만 조금 작다. 대신 JET5 트위터가 만들어내는 굉장히 투명한 고역은 번개처럼 날아와 꽂히는 듯 쾌감이 대단하다.

 


Daft Punk – Get Lucky

 Random Access Memories

이 정도 사이즈에서 고성능 유닛을 탑재하고 대역을 넓혀 해상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경우 너무 과도한 피로감을 주기 십상이다. 또한 다이내믹 헤드룸이 부족해 때로 소리가 쥐어짜듯 부자연스럽고 때론 저역이 붐 트럭 현상을 일으키며 혼탁하게 양감만 증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BS312 Jubilee는 매우 자연스럽게 고해상도를 적절한 다이내믹스 폭 안에서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같은 레코딩에서 소형 스포츠카처럼 빠르지만 중형 세단처럼 자연스럽고 여유 있는 운행을 보여준다. 다이내믹스 소화가 뛰어나며 리듬감도 뛰어난 편이다.

 

 


Trondheimsolistene – BRITTEN Simple Symphony, Op 4

 Divertimenti

BS312 Jubilee가 그리는 무대는 자신의 체급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런 소리는 마치 과거 토템 모델원 같은 스피커를 처음 들었을 때 놀랐던 기억을 소환시킨다. 예를 들어 트론트하임솔리스텐의 ‘Simple symphony’를 들어보면 정위감은 대단히 우수해 악기들의 움직임이 눈에 보일 듯하다. 놀라운 점은 소형 스피커들에서 자주 보이는 빽빽한 거리감이 아니라 악기 간 충분한 거리감이다. 과거 330 JET 같은 스피커도 그 당시 대단했지만 상당히 진화한 엘락의 소릿결 표현력도 인정해줄 만하다. 단단하고 직선적인 면이 있으나 절대 건조하지 않고 매끈한 윤기가 흐른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Charlie Haden, Pat Metheny – Cinema Paradiso

 Beyond The Missoury Sky

엘락 사운드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비교적 크게 갈리는 스피커다. 온도감이 좋고 약간 느리고 여유로운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엘락은 제외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 찰리 헤이든과 팻메스니의 ‘Cinema Paradiso’같은 곡의 소화 패턴에서 갈린다. 하지만 웬일인지 BS312 Jubilee는 이 곡에서 단조롭거나 거슬릴 정도로 얇은 중, 저역이 아닌 꽉 찬 고밀도의 밀도감과 펀치력을 보여준다. 특히 느리면서도 미세하게 진행하는 더블 베이스와 기타의 호흡까지도 느껴질 정도로 세밀한 강, 약 표현이 실체감을 북돋운다.

 

 

총평

한동안 안 보던 사이 엘락은 많은 진화를 거친 듯하다. 기존에 500 시리즈를 들어보면서 상당히 커다란 진보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노력과 노하우가 BS312 Jubilee 같은 하위 모델에 오롯이 전이되어 있었다. 소형 북셀프라는 형식 때문에 저역의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대편성 교향곡을 넓은 공간에서 듣는 용도가 아니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불어 기존에 독일 엘락 스피커에 대한 편견을 아주 간단히 날려버리는 기회가 되었다.

과연 이 가격대에 이 정도 다이내믹스와 정위감, 그리고 디테일까지 겸비한 스피커가 뭐가 있을까? 많이 생각나지 않는다. BS312 Jubilee는 적절한 용도와 공간만 찾아준다면 이 가격의 몇 배 가치를 해줄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생산된 베스트셀러 시리즈엔 나름 그 이유가 있다. BS312 Jubilee는 그동안 여러 메이커에 자리를 내주었던 니어필드 모니터 북셀프의 정상을 다시 탈환했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출처 : HIFI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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